김종남 前 광주일보 편집국장

“고전은 ‘오래된 미래’다. 미래를 알려면 고전을 읽어라,…무기징역(1968년)을 선고받고 옥방에 앉아서 생각한 것이 동양고전을 다시 읽어보자는 것이었다.” <강의 : 나의 동양고전 독법> 에서 쇠귀 신영복(1941~2016)선생 말씀이다. 인류는 지금 코로나19와 세계대전 중이다. 살아남더라도 1차 세계대전 때보다 더 심한 실업대란이 세계를 덮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어떻게 삶을 꾸려가야 하나? 지금 우리 앞을 밝혀줄 고전은 무엇인가.

무기수 독방생활은 쇠귀선생에게 ‘모든 문제를 근본적인 지점에서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최고의 철학교실’ 독방에서 그는 ‘자신과 1960년대 시대가 지향했던 가치에 대한 반성’을 했다. 어렸을 때 할아버지로부터 받았던 한문공부경험, 책을 3권 이상 소지할 수 없게 되어있는 재소자 제약, <주역>이나 <도덕경> 한 권이면 몇 달씩 읽을 수 있다는 이점 등은 ‘우리 것(동양고전)에 대한 공부’를 선택하게 한 동기중 하나다.

“고전공부는 과거, 현재와의 소통을 바탕으로 미래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고전을 재조명하고 그것을 통하여 현재와 새로운 미래를 모색한다.” 쇠귀선생은 주역·논어·맹자·노자·장자·묵자·순자·한비자를 수십 번 씩 읽고 외우며 성찰한다. ‘관계론(세계 모든 존재는 관계망으로서 존재한다)‘이란 화두를 걸어놓고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의 관계로 이루어진 인류 삶에서 ’세계의 중심은 인간이 아니다. 자연이 최고의 질서다’를 고민한다.

코로나19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인류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지상명령으로 모시게 되었다. 사람이 사람을 멀리해야하는 새로운 질서다. ‘독방생활’을 강제하는 명령이다. 독방에서 우리는 지금까지 살아온 의미와 21세기가 지향하고 있는 가치를 근본적인 지점에서 반성하고 있는가? 15년 전 읽었던 <강의>를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새로운 화두를 통해 다시 읽어본다. <강의>는 나에게 ‘오래된 미래’이다.

‘부국강병을 지상목표로 삼고 무한경쟁을 벌이던 춘추전국시대는 백가쟁명을 태어나게 했다. 과잉생산, 과잉축적을 지상목표로 삼고 무한경쟁을 벌이는 현대 산업시대는 거대낭비체계를 낳았다. 거대낭비체계는 모순과 위기를 벗기 위해 자연으로부터 절제와 겸손을 배워야한다.’ 코로나19 사태는 ‘과잉생산, 과잉축적’을 위해 너무 촘촘히 모여 사는 사람사회를 응징하기 위해 ‘가장 안정적인, 최고의 질서 자연’이 내린 갑작스런 채찍 아닐까.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든다.

하늘에 닿게 쌓아올렸던 바벨탑이 하루아침에 무너진 것처럼, 현대문명이 수십 수백 년 쌓아올린 문명의 총화, 거대도시들이 하루아침에 코로나19 확산 진원지가 되어 고통을 받고 있다. 채찍은 부자냐 빈자냐, 선진국이냐 후진국이냐를 가리지 않는다. 한 순간에 현대문명의 번영은 물론 모순까지 한꺼번에 쓸어갈 태세이다. 그러나 인류는 백신을 개발하든 집단면역을 거치든 페스트나 천연두, 메르스 때처럼 ‘이 또한 지나가리라’할 수 있다.

문제는 이후 몰아칠 실업대란 같은 ‘쓰나미’이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우리에게 이후 살아남는 방법까지 가르친다. 강요된 독방생활은 ‘불필요한 모임, 불필요한 여행,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도록 강제했다. 채찍이 준 선물이다. <강의>는 ‘귀본(歸本)사상, 노자’에서 ‘삶의 단순화(도덕경 80장)’를 얘기한다. 불필요함이 채찍을 만나 삶의 단순화로 이어진다.

세상이 아무리 혼란스러워도 봄은 온다. 쇠귀선생의 ‘처음처럼’ 시를 외워본다. ‘처음으로 하늘을 만나는 어린 새처럼, / 처음으로 땅을 밟는 새싹처럼 / 우리는 하루가 저무는 겨울 저녁에도 / 마치 아침처럼, 새봄처럼, 처음처럼 / 언제나 새날을 시작하고 있다.’ “산다는 것은 수많은 처음을 만들어가는 끊임없는 시작입니다.”

언론인 김종남은...

광주서석초등학교, 광주서중학교, 광주제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에서 물리학을 공부했다. 1967년 ROTC 장교로 임관, 강원도 양구에서 2년 반 병역을 마치고 1971년 전남일보(광주일보 전신)에 입사, 30년 동안 기자생활을 했다. 1982년 미국미주리대학 저널리즘스쿨에서 1년간 언론학을 연수했다. 1997년 광주대학교 언론대학원을 졸업하고 16년간 광주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겸임교수로 언론과 지역사회, 언론사상사, 언론문장론을 강의했다. 2001년 광주일보를 나와 4년 동안 광주비엔날레 사무총장을 지낸 후 (사)무등사랑 청년취업아카데미와 인생나눔교실 등에서 글쓰기 특강과 멘토링을 하고 있다.

김종남 前 광주일보 편집국장 (언론인)  news@ygweek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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