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버림 정종 선생의 후학들이 선생을 추모하는 학술대회를 가졌다. 후학들은 선생과 함께한 세월은 물론 육체적으로 떨어져 있었던 세월까지도 학술대회에 담아냈다. 학문은 물론 실생활까지도. 이승과 저승으로 갈린 세월까지도. 선생과 교감하며 살아온 윤사순·송석구·김용정·박성배·오종일·이희재 님께 감사한다. 특히 선생의 발자취를 정리, 30쪽에 달하는 연보를 정리해주신 전주대학교 이형성 교수님의 노고에 경의를 표한다. 선생께서 그렇게도 사랑한 고향, 영광이 하지 못한 ‘숙제’를 대신 해주신데 대한 감사다.

‘온버림 정종 선생님 추모 학술대회’는 4일 동국대학교 문화관 덕암세미나실에서 열렸다. 선생을 기억하는 교수(전·현직)·학생과 영광 사람들이 함께했다. 선생의 말년을 곁에서 지킨 이정연, 선생 밥상에 15년간 국을 끓여간 시인 장진기, 영광향리학회 서민영·박용국 님 등은 천리길 발품을 팔았다.

서울과 그 부근에 사는 나두종 조운 기념사업회장, 사회학자 조은, 고려대 교수 김윤호, 백수 출신 시인 장영규, 대마출신 시인 김수기, 영광읍 우평리 출신 사업가 오재덕 님 등도 참석해 영광의 체면을 살렸다. 이날 현암 이을호 박사님 아들 이원태 님이 맛잇는 저녁을 사 뜻깊은즉석 향우회가 열리기도 했다. 돌아가신 온버림 선생이 고향 후배들에게 주는 선물인 듯.

장진기 시인이 쓴 ‘온버림 정종 선생님 학술대회를 마치고’와 뉴욕 주립대 박성배 교수의 ‘정종 선생과 나’를 요약, 게재한다. 선 문답 같은 두 사람의 대화가 선생의 학문과 사상, 인간적 면모가 모두 담겨있기 때문이다.

                    온버림 정종 선생 학술대회를 마치고

                                                                                                     장진기(시인)

실존의 실천. 표현이 좀 어색하다. 달리 표현할 말이 없어 쓴다. 우리 시대의 젊은날에는 칼 야스퍼스나 하이데거를 읽었다. 칸트를 논하고 까뮈와 사르트르에 심취했다.

정종 선생의 유품 중 쓸 만한 것은 유족들과 곁지기가 챙겨갔다. 자부께서 책을 나에게 기증하겠다고 했다. 받지 않았다. 고서와 자료들을 버리려 해서 그것들을 조운 시인 생가에 보관했다. 사실은 헤지고 퇴색한 메모며 육필 원고들이 더 중요한 것들이었는데 그것을 늦게 안 이들이 여러 번 까보자고 했으나 선생 학술대회를 앞둔 연표 정리할 때에야 내주었다.

이제 정종 선생께 내가 할 일은 다 했다는 생각이다. 선생께서 책 갈피에 넣어두셨다는 엔화나 희귀 서적은 가치가 꽤 크겠지만 내가 선생과 인연 맺은 것은 그런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나에게는 필요치 않은 것이다. 내가 선생에게서 배운 실존의 실천이다. 선생께서는 심지어 본인의 장례에 조의금을 받지 말라는 유언을 남기셨다. 다시 말하면 선생을 이용해 차후에 어떤 사업도 허락지 않으신다는 메세지인 것이다. 다만 가치 있는 일, 교육과 학문 탐구의 일과 저술은 허용하시었다.

온버림 정종 선생 추모학술대회에 30 페이지에 달하는 연보는 그렇게 정리되었다. 모든 참가자들이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앞으로 중요한 것은 선생 연보에 새겨진 자료나 영광의 근현대사 증명 사료들이 공공시설의 서고나 자료실에 보관되고 정리되기를 바란다.

그것은 영광의 몇 안되는 옛 문헌이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공도서실의 보관 시스템 확충과 서고의 마련이 있어야 되겠다.

영광 문학관 건립의 절실한 필요성은 자료들의 전문적 보관 정리 관리를 할 수 있는 장소 확보의 부차적 이유가 되기도 한다.

시에 조운, 소설에 송영, 철학에 현암과 정종, 수필에 소청이면 어느 고장에도 뒤지지 않는 귀하고 막강한 문필과 학자의 구성이다.

이번 학술대회는 유종권 한국 공자학 회장의 개회사와 한태식 동국대 총장의 기념사를 필두로 고려대 윤사순 교수의 ‘온버림 선생의 인간학에 대한 성찰’, 김용정 동국대 교수의 ‘정종 선생의 서양 철학관’, 송석구 교수의 ‘정종 선생과 동국대 철학과’, 오종일 교수의 ‘정종 선생의 유학관’, 이희재 교수의 ‘정종 선생의 교육사상’ 등이 논문 형태로 이루어졌다. 고인의 후학들인 이들은 생생한 선생의 추억까지 담아 참석자들의 공감을 샀다.

이 정도면 선생과 함께했던 후학의 도리는 다했다고 본다. 앞으로 진행되거나 발전되어야 할 것은 서양 실존철학과 동양철학의 비교 탐구와 정종의 실천 철학이다. 동양학적 이해와 서양 실존의 생활화, 현상학적 사유와 사회 개혁과 변혁에의 적응이다. 특히 한반도 통일에 대한 염원과 분단으로 끊어진 남북 문화의 화해와 라이프니츠의 단자 이론에 근거한 인류 공멸의 핵에 대한 반성 등은 우리가 문학과 철학, 예술을 통해서 앞으로 실천해야 할 일이다.

내가 선생을 추모하며 기억에 남는 것은 독서 습관과 규칙적 생활이다. 김충렬 교수가 늘 말씀하셨던 ‘4대적선’을 떠올린다. 선을 쌓다보면 당대에 덕을 얻는 것이 아니고 4대 쯤 가서 큰 빛을 본다는 것이다.

나는 선생의 유품을 지켜드린 것보다 선생의 삶과 실천 의지를 본받아 늦은 나이에도 창작을 놓지 않은 것이 선생과의 교류에서 얻은 최고의 덕목이라 믿는다. 선생의 독서와 나의 창작열은 실존에 기초하고 있다. 선생께서는 눈으로 보지 못할 지경에 이르러 귀로 듣는 이독을 하셨다. 나는 참으로 오해가 많고 고달픈 삶 속에서 시를 자아낸다. 실존의 실천이다.

선생이 그토록 흠모했던 조운·소청·초정 등 고향의 문인을 본 받고 따르는 것은 결국 시인으로서 시를 쓰는 자세인 것이다.

학술대회를 마치고 돌아오는 날 무당신정과 같은 최순실 사태의 탄핵 집회가 백남기 장례식과 맞물려 있었다. 선생이 계셨다면 광화문 촛불 시위에 참여하셨을 것이다. 나는 반핵 등 집회에 모시는 제자였다. 여러 차례 선생을 모시고 집회에 참여했다. 집회 보다도 선생의 안전을 신경쓰게 되었지만 선생과 내가 자리에 함께하는 것이 힘을 보태는 일이기도 했다.

사회 참여는 선생의 정신이다. 선생의 정신이 왜곡되지 않는 추모가 이어져야겠다. 실존의 실천은 사회와 국가와 민족에 이르고 있다. 우리 사유의 학문이 서구적 이론의 탐구에 그치지 않고 가치 실현의 행동적 역할의 영역으로도 발전해야 한다. 정종 선생은 동서양 철학의 그런 지평도 제시하고 있다.  2016년 11월 5일

                                정종 선생님과 나

                                     박성배 교수(뉴욕 주립대, 스토니브룩)

광주의학대학에 입학했다. 농촌으로 돌아가 병든 농민들을 도와야겠다고 생각했다. 정종 선생님은 “좋은 의시가 되려면 먼저 올바른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으로 나의 가슴을 울렸다. 당시 의대 교육은 인간교육에는 관심이 없엇다. 의대를 그만두고 보성의 서당에 들어갔다. 중퇴하면 군대에 끌려가야했다. 고민 끝에 선생을 찾아갔다. “사람은 소신대로 살아야 한다”고 하셨다. 소신대로 서당 공부에 매진했다. 중용의 ‘중’이 뜻이 들어오지 않아 정종 선생께 편지로 물었다. 답은 “빨리 대학으로 돌아오라”였다. 그래서 다시 의과대학으로 돌아갔다.

의학 혐오증은 심해졌다. 의학을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말에 “동국대 철학과는 특별한 대학이다. 너 적성에 맞을 것 같다”고 하셨다. 선생의 말씀은 나의 앞길을 바꾸어 놓았다. 동국대 철학과 3학년에 편입, 대학원까지 졸업하고 조교수로 임명됐다. 전남대 철학과 초청강연을 했다. 의대를 그만 둘 때 불쌍하게 여기던 사람들이 “네가 보통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놀랐다. 선생께 보고말씀 드렸다. “세상은 원래 그런 것이니 신경쓰지 말라”고 하셨다. 선사들의 말처럼 간결하다. 그럼에도 두고두고 잊혀지지 않는다.

교수 노릇 3년만에 사표내고 해인사 성철 스님 밑에서 중노릇 했다. 3년후 중노릇 그만두고 서울로 가 제일 먼저 정종 선생님을 뵈었다. 미국으로 와 신학교에 들어갔다. 거기서 예수님을 만났다. 내가 만난 예수님은 부처님이었다. 세상 모든 성자들의 가르침을 똑같이 소중하게 받들 수 있게됐다. 박사학위를 따고 불교학 교수가 되었다. 약 40년간 가르치고 작년 8월말 은퇴했다.

78년말 미국생활 10년만에 고국을 찾았다. 정종 선생님을 꼭 뵈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선생님은 내가 귀국했다는 말을 듣고 동대 철학과 동창들에게 연락하여 환영 만찬을 베풀어 주셨다.

정종 선생님과 나는 단순한 스승-제자 관계가 아니었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선생과 나를 잇는 고리는 ‘인간’이라는 말밖에 없을 것 같다. 사람, 사람, 사람… 이것이 정종 선생님이 나에게 항상 해주신 말씀이었다. 꾸준히 선생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면서 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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