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활한 여우가 호랑이의 위엄을 이용하여 제 위엄으로 삼는다는 말이다. 전국시대 이야기로 ≪전국책≫ 초책 편에 나오는 이야기다. 아무 실력도 없으면서도 다른 사람에 빌붙어 권세를 믿고 세도를 부리는 사람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전국시대는 글자 그대로 전쟁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시기인데 이때 위(魏)나라 출신인 강을(江乙) 이란 변사(유세객)가 초(楚)나라 선왕(宣王) 밑에서 벼슬을 하고 있을 때였다.

당시 초나라에는 삼려(三閭)로 불리는 세 세도집안이 실권을 쥐고 있어 다른 가문이나 사람들은 역량을 감히 발휘 할 수가 없었다. 이때는 소씨 집안 최고 실권자인 소해휼이 정권(政權)과 군권(軍權)을 모두 쥐고 있었다. 강을은 기회만 있으면 그를 헐뜯고 있었는데 하루는 선왕이 여러 신하들이 있는데서 이렇게 물었다. “초나라 북쪽에 있는 나라들이 소해휼(昭奚恤)을 무척 두려워한다는데 그 말이 사실인가?” 소해휼이 무서워 아무도 말을 못하고 있었다.

그때 기회만 있으면 헐뜯던 강을이 일어나 대답한다. “호랑이가 백수(百獸:모든 짐승)를 찾아 잡아먹으려고 하는데 마침 여우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여우가 호랑이에게 말하기를 「그대는 감히 나를 잡아먹어서는 안된다. 옥황상제(玉皇上帝)가 나를 모든 짐승의 우두머리로 삼았는데 만약 지금 나를 잡아먹는 다면 옥황상제의 명(命)을 어기는 셈이 된다. 내말이 믿기지 않거든 내가 앞서 갈 터이니 그대는 내 뒤를 따라 오도록 하라. 그러면 나를 보고 감히 도망치지 않을 짐승이 과연 있는 지 그대 눈으로 확인 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호랑이가 옳게 여겨 함께 가자 여우를 본 짐승 들이 모두 도망쳐 버리고 말았다. 호랑이는 짐승들이 자신을 두려워하여 도망한줄 모르고 여우를 두려워해 달아난 줄로만 알았습니다. 지금 대왕의 영토는 사방 5천리이고 군사는 일백만 명이나 됩니다. 그런데 이를 모두 소해휼에게 맡겨놓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북방(北方)의 제후국(諸侯國)들이 소해휼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초나라의 갑병(甲兵:군인)을 두려워하는 것이 마치 모든 짐승들이 호랑이를 두려워하는 것과 같습니다.”

정말 재미있고 적절하고 묘(妙)한 비유였다. 소해휼은 임금님을 등에 업고 왕 이상의 위세를 부리는 여우같은 교활한 놈이 되고 선왕은 자기가 허울만 임금이란 것을 자각(自覺)하지 못한 채 소해휼이 훌륭해서 주위에 제후들이 초나라를 두려워하는 줄로 알고 있는 어리석은 호랑이가 되고 만 것이다. 이 세상에는 이런 수많은 「호가호위」 의 부조리가 만연하고 있는데 나타난 것은 빙산(氷山)의 일각(一角) 일 것이다.

이경일  news@weekly.com

<저작권자 © 영광군민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