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근혜 대통령이 두 번째 사과를 했다. 거듭된 사과이지만 결과는 여전히 신통찮다. 조사에 따르면 국민 60%가 진정성이 없는 사과라고 폄하했다.

예견된 일이다. 사과와 사과 사이에 반성의 진심을 의심할만한 일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국무총리와 비서실장 등 주요 각료를 야당은커녕, 집권 여당과도 상의하지 않고 내정 통보를 했기 때문이다. 야당 쪽으로는 문자 통보를 했다 한다. 이 또한 상식 밖의 일이다. 하긴 현직 총리에게 까지 별다른 언질 없이 진행된 일이라라 하니 달리 무슨 말을 하겠는가.

사과는 입으로 하지만 마음이 보여야 한다. 최순실과의 불가피한 인연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키며 용서를 구했을 뿐, 거국내각 구성이나 향후 대책에 대한 언급이 전무했다. 국정을 여전히 자신을 중심으로 이끌어가겠다는 의지를 밝힌 바나 다름이 없다. 영혼의 멘토인 최순실이 구속된 마당에 또 다른 누구의 조언을 받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여전히 상황인식이 한참 뒤떨어져 있다.

국민의 분노는 박 대통령과 최순실과의 사사로운 관계를 따져 묻는 게 아니다. 국민이라는 공화국의 주권자가 지엄한 투표를 통해 뽑아준 대통령이 최순실 일당에게 그 권리와 의무를 통째로 넘겨버린 사실에 대해 국민들은 지금 분노하고 있다. 그들이 그만한 전문성과 자격을 갖춘 이들 이기라도 했다면 국민들의 노여움이 차마 그렇게 극대화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호빠 출신과 CF 감독, 그리고 강남의 고급 목욕탕과 식당을 전전하며 수다 떠는 수준의 아줌마에게 대통령 연설문, 외교, 안보 등 중차대한 국정의 상당 부분을 자문 받았다는 점에서 국민들은 지금 경악하고 있다. 그러는 동안에 청와대 요직과 장차관 등 각료들은 허수아비 꼴이었다. 1년 동안 대통령과 독대 한번 하지 못한 장관도 수두룩했다.

국정을 농단한 그들이 개개인의 사사로운 욕망만을 취했다면 그 부도덕에 대한 단죄로 끝날 일인지도 모르지만, 농단의 독소는 극악했다. 그들의 욕망을 가로막는 공직자를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제거했고, 말 타는 딸의 입신양명을 위해 대학을 능멸했고, 청와대 행정관과 장차관들을 종 부리듯 했다. 재벌들도 대통령을 등에 업은 그들의 한 두 마디의 말에 적게는 수십억에서 수백억의 돈을 갖다 바쳤다.

박 대통령은 결국 국민의 대통령이 아닌, 이들 최순실 일당의 욕망을 지키고 확장시키며, 가로막는 이들을 겁박하는 골목대장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다. 대한민국은 공화국이 아닌, 이들의 나라였다. 국감 현장에서 최순실 연설문 수정 의혹을 물었을 때 그런 일은 봉건왕조 시대에나 있을 법한 일이다고 답변한 이원종 전 비서실장의 말은 그런 의미에서 명답이었다. 권력의 장막 뒤에서 펼쳐진 그들 악행의 전모가 하나씩 벗겨지면서 대한민국이 공화국이 아닌 봉건왕조였음을 눈앞에서 시시각각 확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정한 문제는 이것이다. 그럼 그동안 우리는 어디에 있었는가. 국민의 권리를 대변한다는 여야 정치권과 언론은 또 어디에 있었는가. 박근혜 게이트가 우리들에게 안겨준 위대한 각성이 하나 있다면 아무리 훌륭하고 견고한 민주주의 체제도 양식을 갖춘 구성원들의 성찰이 없다면 유리병처럼 허약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대한 인식이다.

다시 촛불이 타오르고 있다. 민주주의를 지키는 것은 그 잘난 지도자들의 지혜와 그들이 만든 체제가 아닌 각성한 국민들이 치켜든 저항의 촛불이라는 점을 우리는 다시금 깨닫고 있다. 폭풍 전야의 이 역사적 전환점을 박 대통령이 아직도 짐작조차 못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하긴, 부당한 권력이 스스로 날개를 접는 해피엔딩은 아주 희귀한 일이긴 하지만.

박호재  news@ygweek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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