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일근 편집위원장

의사들이 파업 했다. 의대 정원을 늘리겠다는 정부 방침을 의사들이 정면으로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반대 이유는 그럴 듯 했을 것이다. 그래도 보통 국민들은 하나도 기억하지 않는다. 그냥 의대 정원을 늘리면 의사 수가 늘고, 의사 수가 늘면 수입이 줄어들기 때문에 반대하는 것으로만 받아들였다. 그들의 주장을 듣거나 읽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였다. “늘려봤자 효과가 없다”는 것이 파업 이유다.

우리나라에서 의사는 고소득이 보장되는 직업이다. 또한 생명을 다루는 숭고한 직업으로 존경과 부러움을 사고 있다. 최고의 사윗감으로 친다. 그런 의사들이 파업에 나서는 모습은 ‘최고’답지 않았다. 존경스럽지도 않았다. 정부가 한 발짝 물러서면서 합의가 됐다. 의사들은 고소득 보장 구조는 ‘일단’ 지켰다. 그러나 그 구조는 언제든 깨질 수밖에 없다. 금간 그릇은 언젠가는 깨지는 것처럼. 의대 정원 증원도 언젠가는 현실화될 수밖에 없다.

이번 의사 파업 사태의 진원지는 사실상 전남이다. 전남에 의대 신설 요구가 거세지자 정부가 이를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이자 파업에 나선 것이다. 의대 신설 현실화를 기대했던 전남사람들에게 이번 의사협회 파업이 곱게 보이지 않는 이유다. 아니 원망스러울 정도다. 그 파업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속이 더 터진다. 파업을 주도한 의사협회 회장이 전남 사람이어서다. 그의 고향에서는 의사 수를 늘려 달라고 아우성인데 그는 늘리면 파업하겠다고 협박하는 데 앞장섰다. 개구리 올챙이 적 모른다더니….

의사협회의 로비 능력은 정평이 났다. 의사협회와 한의사 협회, 약사협회는 상당 부분 이해가 상충한다. 그러나 거의 의사협회가 이긴다고 한다. 이번에 이슈가 된 한약 첩약 보험화도 의대 정원 증가와 함께 의사들에게 밀렸다. 그들은 지는 이유를 ‘자금력’이라고 주장한다. “천문학적 규모의 자금을 가진 의사협회를 이길 수가 없다”는 약사나 한의사들의 푸념을 듣기는 어렵지 않다. 이번 파업 사태를 보니 자금력보다 기득권을 지키려는 강한 의지가 최대의 무기로 보인다.

의사는 인간의 생명을 다룬다는 점에서 존경 받아 마땅하다. 그런데 의사들의 파업을 보면서 존경심은 사라진다. 그냥 고소득이 보장되는데다 정년퇴직도 없어 인기가 있는 직업인 정도로 보일 뿐이다. 이 정도면 이번 의사협회 파업은 의사들에게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은 거사였다. 고소득과 의사에 대한 뿌리 깊은 믿음과 존경심을 맞바꾼 것이다. 더욱, 코로나19 확산으로 의사의 수요가 폭증하는 시점이다. 이런 시기에 가운을 벗어던진 것은 의사들이 생명을 소중히 여기지만은 않는다는 면 까지 보였다. 실망이다.

종합병원은 물론 어지간히 환자가 많은 병원은 진료 대기 시간이 수십 분에 달한다. 예약을 하고서도 30분 넘게 기다기기 일쑤다. 그래도 의사가 부족하지 않다는 것인가. 서울의 유명 병원에서 초진을 받으려고 몇 달씩 기다리는 것은 상식이다. 광주의 종합병원만 가도 환자들이 넘쳐난다. 묻지도 따지지 않아도 의사들의 숫자는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줄어드는 인구보다 노인 비율이 높아지니 의사들의 수요는 갈수록 커지기 마련이다. 의대 정원을 늘려야 할 이유는 넘쳐난다.

세계의사협회가 1948년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기초로 제정한 ‘제네바 선언’ 일부를 소환한다.

이제 의업에 종사할 허락을 받음에 △나의 생애를 인류 봉사에 바칠 것을 엄숙히 서약하노라. △나는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첫째로 생각하겠노라. △나는 인종, 종교, 국적, 정당 정파 또는 사회적 지위 여하를 초월하여 오직 환자에 대한 나의 의무를 지키겠노라. △나는 인간의 생명을 수태된 때로부터 지상의 것으로 존중하겠노라.

조일근 편집위원장  news@ygweekly.com

<저작권자 © 영광군민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