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남 前 광주일보 편집국장

‘위드(with)코로나 시대’에 <페스트 / 김화영 옮김>를 읽는다. ‘1947년 6월10일 출간된 <페스트>는 한 달 만에 초판 2만부가 매진되고, 외국어번역을 제외하고 오로지 프랑스어 판만으로 5백만 부가 팔린다.’ 2011년 민음사 한국어판은 ‘2차 세계 대전시기를 경험한 동시대인들에게 큰 공감을 얻어냈다’는 표지 글로 그 열풍을 풀이한다. 이제 출간 된지 73년, 2020년 세계인들이 <페스트>를 다시 찾아 읽는다.

세계인은 지금 코로나19와 전쟁 중이다. ‘페스트’란 단어를 ‘코로나19’로 바꾸면 소설<페스트> 이야기는 지금 우리이야기이다. 세계 대전을 겪은 70년 전 독자들은 ‘페스트’란 단어를 ‘전쟁, 죽음’으로 읽었지만, 지금 우리는 ‘코로나19, 확진자’로 읽는다. ‘고통과 생이별’을 공감하고 ‘위안과 희망’을 얻는다. “그래도 우리들보다 덜 자유스러운 사람이 있다는 것을 상상하고는 어떤 위안을 얻는 것이었다.… ‘항상 나보다 더 부자유한 사람이 있다’는 것은 그 무렵에 품을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을 요약하는 표현이었다. (223p)”

저자 알베르 카뮈(1913~1960)는 세계 1차, 2차 대전을 겪은 전쟁피해자다. ‘태어난 다음해인 1914년, 1차 세계대전에 징집된 아버지를 잃고, 가정부로 일하는 어머니 밑에서 가난하게 자란다. 1939년, 2차 세계대전 때는 폐렴을 앓으면서 항독지하 운동을 벌이고, 전쟁 통에 사랑하는 아내와 2년간 생이별도 해야 했다.’ <페스트>는 카뮈의 생존기록이자 ‘운명과 대결하는 인간의 투쟁기’이다.

지난 1월 20일 첫 확진자 발생으로 시작 된 우리나라의 ‘코로나 전쟁’은 지금 8개월째다. 매일 발표되는 확진자수에 모두 피 말리듯 생병을 앓는다. “그 병의 첫 고비는, …사망자수를 하루에 92명, 107명, 120명이라는 식으로 보도하기 시작한 시점이 계기였다. …아! 차라리 지진이기나 했더라면! 한 번 와르르 흔들리고 나면 더 이상 아무 말이 없을 텐데 …그런데 이 망할 놈의 병은 글쎄! 병에 걸리지 않은 사람까지도 생병을 앓게 된다니까. (154p~160p)”

페스트 집단감염으로 194X년 4월에 시작된 오랑시 봉쇄는 8개월 만에 풀린다. ‘다음해 2월 어느 화창한 날 아침 마치 전쟁이 끝나는 날처럼 성대한 축포와 종소리가 울려 퍼지고, 광장마다 춤을 추는 시민들로 북적인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코로나 전쟁은 터널 끝이 보이지 않는다. 소설을 마감하는 끝 문장, 의사 리유가 축제의 외침 소리를 들으며 걱정하는 서술은 어찌 보면 70년 후 지금을 예언한 문구 같다.

“페스트균은 결코 죽거나 소멸되지 않으며, 그 균은 수십 년간… 꾸준히 살아남아 있다가 아마 언젠가는 인간들에게 불행과 교훈을 가져다주기 위해서 또다시 저 쥐들을 흔들어 깨워서 느 행복한 도시로 그것들을 몰아넣어 거기서 죽게 할 날이 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402p)

리유의 마지막 말대로, ‘수십 년간 살아남아있던 그 균’이 ‘어느 행복한 도시’만이 아닌 전 세계 도시에 ‘불행’을 몰고 왔다. 엄마 품에 안겨 고개도 못 가누는 몇 달 박이 어린애에게도 마스크를 씌워야 외출할 수 있는 세상을 몰고 왔다. “사람은 제각기 자신 속에 페스트를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늘 스스로를 살펴야지 자칫 방심하다가는 남의 얼굴에 입김을 뿜어서 병독을 옮겨주고 맙니다. (329p)”

우리는 끝이 보이지 않는 ‘위드(with)코로나 터널’을 어떻게 견디며 살아야하나? SNS에서 본 부산샘터교회 안중덕 목사의 예배문이 생각난다. “마스크를 착용하라는 것은 ‘잠잠하라’는 뜻입니다. … 불필요한 말을 줄이고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라는 말입니다. 입을 다물면 사랑스러운 것들에 시선이 머물게 되고 아름다운 소리와 세미한 속삭임이 들려올 것입니다.” 그렇다! 세상에는 ‘항상 나보다 더 부자유한 사람이 있다.’

김종남 前 광주일보 편집국장 (언론인)  news@ygweek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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