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원 해룡중학교 교장

아내가 쌀을 보관해야겠다며 항아리를 사러 가자고 한다. 항아리는 운치도 있거니와 숨을 쉴 수 있는 그릇이기에 쌀을 보관하면 좋을 것 같았다. 어디로 사러 갈까? 몇 년 전 가본 적이 있는 ‘고창옹기’를 애써 찾았다. ‘고창옹기’는 전북 고창군 고수면 남산리 장암마을에 자리잡고 있으며, 전에는 마을 전체가 옹기를 생산하는 점촌(店村)으로 500년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지금은 ‘고창옹기’만 남아 6대째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지만, 자연 유약을 직접 제작하여 다양한 형태의 무공해 옹기를 현대식 가마를 사용해 생산함으로써 활로를 찾고 있다.

옹기(甕器)의 옹(甕)은 ‘독’이라는 우리말의 한자어로 그릇의 형태를 일컫는 말이며, 질그릇과 오지그릇의 총칭이다. 질그릇은 진흙만으로 초벌구이를 한 그릇으로 잿물을 입히지 않아 윤기가 없고 겉이 테석테석한 그릇이고, 오지그릇은 질그릇에 잿물(오짓물, 유약)을 입혀 다시 구운 그릇으로 윤이 나고 단단하다. 근대 이후 질그릇의 사용이 급격히 줄어들면서 옹기는 주로 오짓물이 입혀진 오지그릇을 지칭하는 말로 바뀌게 되었다.

옹기는 모양과 용도에 따라 여러 가지 이름이 있지만 가장 많이 접하는 것은 독, 항아리, 동이, 단지 등이다. 보통 크기에 따라 큰 것은 독, 중간 크기는 중들이, 작은 것은 단지라 부르며, 항아리는 중간 크기로 아래위가 좁고 배가 몹시 부른 형태의 오지그릇을 말한다. 이런 옹기를 가정집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곳은 장독대이고, 쌀광에도 곡식을 저장하는 큰 독이 있었다.

장독대는 과거 한국 가정의 필수적 설비로서 대체로 햇볕이 잘 드는 동편에 마련했는데, 대지가 넓은 집은 뒷마당에 만들고, 좁은 집에서는 앞마당에 만들었다. 돌을 2∼3층 쌓아서 1∼2평의 높다란 대(臺)를 만들고, 맨 뒷줄에는 큰 독, 중간에는 중들이, 앞줄에는 항아리나 단지를 늘어놓았다. 가장 큰 독은 간장을 저장하는 장독으로 쓰고, 중들이에는 된장이나 막장 등을 담아 두었으며, 앞줄의 작은 항아리나 단지에는 고추장류, 장아찌류를 담아 두었다. 이처럼 옹기에 대부분 장류를 담아 펼쳐놓았기에 ‘장독대’라 이름한 것이다.

요즘에는 대부분 장류를 가정에서 직접 담그지 않고 조금씩 사서 냉장고에 보관해가며 먹는데다 주로 아파트 생활을 하기 때문에 장독대가 거의 사라져가고 있다. 게다가 플라스틱이나 스테인레스 그릇의 등장으로 주변에서 옹기마저 찾아보기 힘들게 되어 자칫 질그릇 문화가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이에 국가 차원에서 옹기보호책으로 1989년 5월 옹기인간문화재를 지정했고, 1990년 옹기장(옹기 만드는 기술자)을 중요무형문화재 제96호로 지정했다.

항아리를 가볍게 두드렸을 때 나는 맑고 청아한 소리, 어렸을 때 숨바꼭질을 할 때면 장독대 속에 숨어 가슴을 조이던 일과 눈이 소복이 쌓인 장독대의 단아한 아름다움, 숯과 홍고추를 끼운 금줄을 둘러친 장독 등이 점점 잊혀져가고 있다. 그래서 오늘 아내가 항아리를 사자고 했을 때 옛 생각이 떠올라 한달음에 ‘고창옹기’까지 달려갔다. 항아리 속에 쌀을 부어넣을 때는 추억을 쏟아 담는 것 같아 묘한 감정에 사로잡혔다.

박석원 해룡중학교 교장  news@ygweek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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