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일 회사원

차를 타고 터널 안에 들어갔을 때 시야는 좁아 터널 안만 볼 수밖에 없는 것처럼 주위는 보지 못하고 앞만 보이는 상태를 말한다. 사람들은 무엇에 깊이 빠져 몰입상태가 되면 주위를 무시하고 앞만 보고 달린다. 이런 몰입상태를 독서나 창의력을 요구할 때는 매우 효과적이며 많은 학자들이 권장하기도 한다. 몰입상태에 들어가면 그 일에 집중하여 좋은 아이디어도 도출되고 창의적인 발상이 많이 나온다. 그러나 갈등상황에서는 좁은 시야 때문에 몰입이 오히려 자신을 묶는 위험한일이 될 수 있으므로 조심해야한다.

예를 들어 텔레비전 토론에서 주제는 같으나 서로 상반된 주장을 하며 토론할 때가 있다. A가 B에게 공격적으로 자기주장을 하며 B에게 왜곡하고 있다고 강하게 주장하면 B역시 A를 공격하기 위한 명문을 찾게 된다. 인간이란 말 속에서 찾으려고 들면 아무리 완벽하게 자기의 주장을 펼친다고 해도 공격을 하다보면 실수하기 마련이다.

B는 그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다. 그때부터는 토론 주제에 상관없이 상대방 흠집 내는데 모든 역량을 쏟게 되어있다. 사람들은 흥분하게 되면 주위는 잘 보이지 않고 주의력과 거기에 맞는 적절한 비유 같은 것이 생각나기 보다는 상대를 무너뜨리려는 욕심이 생길 수 있다.

그러므로 진행자가 중간에서 정리해 주지 못하면 끝없는 발목만 잡게 되고 시청자들은 짜증을 내거나 채널을 돌릴 것이다. 이런 경우가 대표적인 터널 비전이다.

몰입은 축복일수 있다. 내가 원하는 일이나 알고 싶어 하는 것에 몰입할 때는 참 긍정의 몰입이다. 그러나 과유불급처럼 지나치면 재앙이 되기도 한다. 스토킹도 몰입의 일종이다. 자기의 잘못된 판단 때문에 상대는 좋아하지도 않는데 끝까지 따라다니며 감시한다면 당하는 입장에서는 얼마나 괴로울까. 그래서 갈등상황의 몰입은 자해를 부르며 매우 위험한 상황을 불러오게 된다. 몰입의 단점이 균형감각을 잃기 때문이다.

터널비전은 지식인 개인에게는 장점과 단점이 있겠지만 사회 전반을 다루는 정치인들에게는 단점이 더 많다. 이것은 순전히 권력의 속성으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아일랜드의 신경 심리학자 이안 로버트슨(Ian Robertson)은 “성공하면 사람들이 변한다고 하는데 맞는 것 같다. 권력은 매우 파워풀한 약물이다. 인간의 뇌에는 ‘보상 네트워크’라는 것이 있다. 뇌에서 좋은 느낌이 들게 하는 부분이다. 권력을 잡게 되면 바로 이 부분이 작동한다.”고 말한다. 테스토스테론이란 남성호르몬을 분출시키고 그것이 도파민이라는 신경전달물질 분출을 촉진해 보상네트워크를 움직인다. 그래서 사람은 더 과감하고, 모든 일에 긍정적이며, 심한 스트레스 까지도 견디게 된다.

그래서 권력을 항우울제(우울증 치료제) 라고도 한다. 또한 도파민은 좌 뇌 전두엽을 촉진해 권력을 쥔 사람을 더 스마트하고, 집중력 있고, 전략적으로 만들어 준다. 그러나 지나친 권력은 코카인과 같은 작용을 한다. 말하자면 중독이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너무 많은 권력을 가지게 되면, 비례해서 도파민도 많이 분출된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공감하지 못하고, 실패에 대한 걱정도 없으며 터널처럼 아주 시야가 좁게 되고 오직 목표만 표적삼아 저돌적으로 밀어 붙인다. 이때 자기애에 빠져 오만하게 된다. 감정싸움에서도 터널비전은 나타난다. 싸움이 길어지면 균형감각을 잃게 되고 내가 합리적이라고 믿으며 전혀 평상시와 다른 사람이 되기 마련이다. 객관적으로 합리적인 판단을 하려면 서로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볼 줄 알아야 한다.

균형감각을 잃게 되면 상대편의 언행은 무조건 악의적으로 해석되며 시간이 지나도 정신만 피폐해지고 더욱 악화된다. 이른바 분노에서 증오로, 증오에서 숭배로 법칙처럼 이어진다. 처음에 정당한 분노에서 시작된 싸움이 점점 악화되어 증오로 바뀌고 결국은 증오의 대상으로 숭배하게 된다. 사소한 작은 것도 그냥 넘어갈 수 없고 증오가 몰입상태에 들어가면 주변의 풍경은 안중에 들어오지 못하고 마치 터널처럼 아득하게 작은 구멍만 보일 뿐이다.

이렇게 치열한 싸움이 전개되면 자기성찰은 원천 봉쇄될 수밖에 없다. 이것도 일종의 몰입상태라고 볼 수 있는데 상대의 허물만 보이고 자신의 허물은 대부분 보이지 않는다. 어떤 목적이 있을 때 창의적인 몰입은 바람직하지만 심각한 갈등상황에서의 몰입은 터널비전을 불러오므로 매우 위험할 수 있다. 이때는 현재 자기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다시 확인하고 이성을 찾아 주위를 돌아보면 멀리 보이는 작은 빛이 아니라 환한 상태에서 두루두루 볼 수 있는 안목을 가질 때 터널비전을 탈피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경일 회사원 (대한시멘트)  news@ygweek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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