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일 회사원

무후 편에선 이의부는 태종연간에 편찬된 《씨족지(氏族志)》에 무씨가 빠졌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이를 수정하자고 무후에게 말했다. 권력을 무후가 넘겨받자 명망 있는 가문들의 내력을 기록한 《씨족지》를 개편하여 원로파 세력에 타격을 입히고자하는 불손한 의도다. 거기에 편승하여 자기 가문도 《씨족지》를 만들어 명망 있는 가문의 반열에 올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여기고 개편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기에 이른다.

씨족지를 만들면서 자신은 조군의 이(李)씨 출신으로 여러 이씨들과 멀고 가까운 관계에 있음을 한껏 자랑한다. 이때 이씨 성을 가진 사람들은 이의부의 권세가 두려워 모두 형님 동생하며 빌붙었다. 당초에 급사중으로 있던 이숭덕은 이의부가 보주 자사로 강등되어 갈 때 이씨 족보에서 삭제한 일이 있었다. 이 일로 원한을 품고 있다가 복직이 이루어지자 이숭덕의 죄를 날조하여 스스로 죽게 만든 일도 있었다.

과거에 유능한 가문에게 혼인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한 사례가 몇 번 있었다. 그 일 때문에 씨족지를 가진 7개 명문가끼리 서로 혼인을 못하도록 만들기도 했다. 자기 족보를 명문가의 족보에 올리기 위해 조정에서 5품 이상을 지낸 사람은 모두 사류(士類)로 올려 족보에 기재하도록 했다. 이렇게 무후의 욕망을 채워주면서 실제로는 자신의 가문을 명문 대족의 반열에 올려놓은 것이다.

여기에 만족하지 못하고 조부의 무덤을 이장하기로 하고 황제인 고종의 윤허를 얻었다. 이씨 가문의 영광으로 여기고 토목공사를 크게 일으키는가 하면 부근의 사람들을 동원해 사적인 공사에 참여하도록 했다. 일이 얼마나 힘들었든지 고경업이란 현령은 과로로 쓰러져 사망하는 일까지 발생하였다. 묘하나 개장작업을 마치자 축하하고 예물을 바칠 행렬이 70리를 메웠다고 하니 얼마나 큰일이었겠는가. 조부 개장 작업으로 조상을 빛내고 엄청난 하례품 까지 챙긴 이의부는 수완을 뽐내며 그 명성은 조야를 울릴 정도였다.

이렇게 이의부의 권세는 영원히 지지 않을 태양 같았다. 봉건주의 제왕 체제하에서 최고 권력자의 총애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사실을 간파한 이의부는 무능한 고종과 자신이 추천하여 왕비가 되었던 무후를 근거리에서 철저하게 비위를 맞추며 자기 기반을 다진 것이다. 이의부의 잘못된 움직임을 알고 충직한 신하들이 몇 번 나서 보았지만 번번이 묵살되는 것을 보면 권력 앞에서는 별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이의부의 권세를 잘 나타내주는 한 사건이 있었다. 순우씨 라는 미모의 여인이 죄를 지어 감옥에 있었다. 이 일을 안 이의부는 대리승(大理丞:재판관) 필정의 에게 압력을 넣어 무죄로 석방하라고 했다. 갑자기 무죄로 나온 미모의 순우씨는 영문도 모르고 이의부의 첩이 된다. 대리경 단옥현이 이 사실을 알고 고종에게 보고했다. 고종은 급사중 유인궤와 시어사 장륜에게 사건의 전말을 조사하도록 했다. 사태가 자기에게 좋지 못한 방향으로 흐름을 직감한 이의부는 진상을 감추기 위해 재판관 필정의를 핍박하여 자살하게 함으로써 우선은 입을 막았다.

그러나 사건을 잘 알고 있는 왕의방이 들고 일어난다. 왕의방은 사건을 축소하려고 옥리를 죽여 가며 입을 막고, 마음 씀씀이가 악랄하고, 죄인을 첩으로 삼았으니 이의부를 내쫓아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였다. 부끄러워 얼굴도 들지 못할 상황인데 이의부는 놀랍게도 차분한 얼굴에 미소까지 띄고 있었다. 마치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평온해 보이기까지 했다. 도리어 왕의방을 압박해 들어가기 시작한다.

왕의방이 이의부를 비롯한 고종의 측근들을 깨끗하게 정리할 것을 요구한부분이 고종과의 대결구도로 보인결과를 초래한 것이 되어 버렸다. 고종 자신이 보아도 주변 인물들이 깨끗하지 못한 사람들이 있었다고 본 걸일까? 이의부는 고종에게 이점을 파고들면서 고종에게 이간질 하였다. 어리석은 고종은 화를 참지 못하고 왕의방에게 조정에서 불손한 언행으로 대신들에게 모욕을 주었다는 죄목을 덮어 씌웠다. 정작 잘못한 이의부는 그대로 놔두고 왕의방만 산동으로 귀양을 보내는 선에서 일단락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의부의 세도는 고종과 무후를 등에 업고 죽고 없는 부모와 자식들, 심지어는 젖 먹는 아이들에게 까지 관작을 수여했다. 자식들의 매관매직은 이루 말할 수 없었고 무식한 사람이라도 돈만 바치면 고관대작을 얻을 수 있는 나라가 되어버린 것이다. 법은 뒷전이고 돈만 있으면 민법 형법이 필요 없는 이런 이의부에게 맞서 들고 일어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4부로 계속>

이경일 회사원(대한시멘트)  news@ygweek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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