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일 회사원

인간이 소유하거나 소유하지 않거나 모든 사물에는 가격이 존재한다. 그러나 가격은 있어도 가격을 붙이지 않을 때 더욱 빛이 나는 것도 있다. 미국의 경제학자 에두아르도 포터(Eduardo Porter)가 〈뉴욕타임즈〉에 수석기자로 입사하여 비즈니스나 경제는 물론 사회, 심리 분야까지 통찰과 예리한 분석으로 기사와 칼럼을 기고하면서 썼던 것을 정리하여 책으로 발간하면서 모든 것의 가격이 유명해 졌다. 그는 경제학자겸 언론인으로 활동하였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개인의 필수품으로 등장한 휴대폰을 비롯하여 핸드백, 컴퓨터, 구두, 자동차, 냉장고를 비롯한 가전제품 등 눈에 보이는 모든 사물에는 가격이 존재한다. 인간들은 좀 더 효율적인 소비를 위해 겉으로 확실하게 드러난 가격을 끊임없이 비교 분석한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것 즉 생명과 신앙, 행복, 노동, 공짜, 미래까지 존재하고 있으며 심지어 인간의 삶을 통제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가 운영하는 웹사이트(http://eduardoporter.com)에 들어가 보면 마리화나 소지를 불법으로 규정한 법률의 가격은 2010년 기준으로 7천 5백만 달러라고 나와 있다. 이 근거는 소지자를 체포한 경찰의 인건비, 재판비용, 수갑 등 그 사건에 소요된 모든 비용을 합산한 금액이라고 했다. 또한 미국 한경 보건국이 미국인 한명에 목숨에 붙은 가격이 2009년 기준으로 9백 십만 달러라고 발표한 것을 감안한 가격이라고 언급했다.

다른 나라 통계지만 우리가 이런 기사를 접하게 되면 어떤 생각이 들까? 아마 마음속에서는 허무함과 함께 불편한 심기가 나도 모르게 솟구칠 것이다. 물질 만능 사회에 당연한 논리는 아닌지 우리의 실제모습을 보는 것 같기도 한다.

그런데 만약 우리가 선택을 할 때 모든 것에 상대가치를 부여하고 이를 토대로 결정한다면 포터의 주장대로 모든 것에 교환가치 즉 가격을 붙이는 것이 왜 불편해야 하는지 의문이 간다. 실제로 인간은 매일매일 무의식적으로 가격을 매기면서도 노골적으로 돈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하는 것을 싫어하는 것은 한편으로 위선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이렇게 모든 보이는 것에 가격을 매길 수 있을지는 몰라도 인간 심리에 있어서는 돈으로 환산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에 대해 각각 전혀 다른 가치기준과 윤리적 가치를 들이댄다. 주위에서 쉽게 접하는 복사용지나 포스트잇, 스카치테이프 같은 간단한 사무용등을 개인용도로 쓴다고 해도 양심의 가책을 받는다거나 옆에서 보는 사람도 비난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나 금고에서 현금을 꺼내 간다면 이것은 명백한 절도에 해당된다.

그리고 돈에 상관없이 활동을 하면 봉사지만 돈을 받고 일을 하면 엄연한 고용관계나 거래라고 할 수 있다. 미국에서실업자들에 법적 자문을 해 줄 수 있는 변호사를 비영리단체에서 구하는 일이 있었다. 비영리단체여서 자금이 넉넉하지 못해 시간당 30불 밖에 줄 수 없다고 공고했다. 마감 기간이 다 되어도 나서는 변호사가 한 사람도 없었다. 곤경에 처한 단체의 우두머리는 아이디어를 짜내 실업자들의 법률자문을 도울 봉사자를 구한다는 공고를 바꿔서 냈다. 이렇게 순수하게 자원봉사자를 구하자 아이러니 하게도 변호사들이 쇄도하는 진풍경이 일어났던 것이다. 이런 행동들은 인간이 가격이라는 가치기준으로 거래하는 영역과 그렇지 않은 영역을 나눠서 생각해 이분법적으로 보여준다. 그 누구도 사람의 목숨이나, 종교의 자유, 병역면제, 사랑과 우정 등에 대해 가격을 매기려 하지 않을 것이며 이런 것들을 돈으로 환산하여 욕심을 채우려 한다고 비윤리적 행동으로 간주해 비난할 것이다.

심리학자들은 동일한 상황이라도 이를 돈과 연관시켜 생각 하는가,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생동양상이 달라진다는 것을 실험을 통해 입증했다. 미국에 미네소타 대학의 캐슬린 보즈와 그의 동료들은 피험자를 모집하여 단어 카드를 주고 단어를 조합하도록 과제를 주었다. 두 그룹으로 나누어 한 그룹은 돈과 관련된 과제를 다른 그룹은 중립적인 단어들을 주었다. 이 과제가 끝난 다음 두 그룹 모두에게 엄청나게 난이도가 높은 퍼즐 맞추기 과제를 주었다. 그리고 어려워서 해결을 하지 못하겠으면 손을 들어 조교의 도움을 받으라고 말해 두었다.

몇 차례 피험자를 바꿔가며 실험을 진행했지만 결과는 동일했다. 돈과 관련된 문장 맞히기를 하고난 그룹은 그렇지 않은 그룹보다 시간을 오래 붙들고 있으면서도 도움을 늦게 청한다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실험에서 실제로 보수를 지급하느냐 하지 않느냐를 떠나 ‘인지적 편향’을 돈과 관련된 쪽으로 유도하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을 태도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돈을 염두 해 둔 상태에서는 과제에 더 끈덕지게 매달리며 남의 도움을 주지도 받지도 않으려는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업무의 생산성을 높이는 데는 도움이 될지는 몰라도 인간미는 삭막해 보인다.

근래에 와서는 기업이나 학교에서 직원이든 학생들에게든 동기부여 차원에서 경제적 가치를 강조하는지 아닌지는 많은 차이를 가져올 수 있다. 최근에는 일부 기업들이 본봉을 줄이는 대신에 성과급을 대폭 늘려서 직원들의 생산성을 높이려 하는데 이는 서로 아이디어를 모으고 협업을 중시하는 현대적 기업 문화에서 그렇게 좋은 방법이 아니라고 한다.

이경일 회사원(대한시멘트)  news@ygweek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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