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일 회사원

한나라를 세운 한고조(漢高祖) 유방(劉邦)과 한신(韓信) 과의 대화에서 항우(項羽)를 ‘필부지용’으로 빗대서 말한 한신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원래 한신은 한나라 왕족출신이었지만 진(秦)나라를 거치는 동안 일개 장수에 지나지 않았다. 항우 밑에서 겨우 위관(尉官)급 장교로 있으면서 항우의 생각과 포부를 보며 자기가 있을 곳이 되지 못한다고 판단하여 도망해 유방에게로 온다.

함양(咸陽)을 떠나 한중왕이 되어 촉(蜀)으로 쫓겨 가는 유방을 따라갔으나 바로 발탁되지 못한다. 등공 하후영(夏候嬰)이 한신의 실력을 알아보고 유방에게 추천하여 말단의 치속도위(治粟都尉)로 임명했다. 말하자면 한신을 비범(非凡)한 인물로 보지는 않았다. 한신은 역시 유방도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구나 하면서 떠나기로 작정하고 말을 타고 달아난다. 한신의 능력을 알고 있었던 소하(蕭何)는 한신을 쫓아가 다시 데려와서 유방에게 다시 책임 있는 벼슬을 요구하며 추천한다.

소하의 요구대로 한신을 대장군(大將軍)에 임명하고 지금까지의 정세와 앞으로의 계책을 상의하였다. 과연 한신이 천하제일의 장수임을 알았다. 한신은 항우 밑에 있을 때 항우의 사람됨을 유방에게 이야기 한다.

“항왕이 노기를 띠고 한번 호령을 하면 천명이나 되는 사람이 정신을 잃지만 어진 장수를 믿고 맡기지 못합니다. 이것은 필부(匹夫)의 용기(勇氣)에 지나지 않습니다. 항왕이 사람을 대하는 태도는 공손하고 인정이 많으며 말을 할 때도 부드럽습니다. 병사가 병에 걸렸을 때에는 흐느껴 울면서 자기가 먹을 음식을 나누어 주기도 합니다. 그런데 사람을 써서 그 사람이 마땅한 공이 있어 벼슬을 주어야 할 경우가 생기면 봉해줄 벼슬에 직인을 새겨 그를 주려 하다가도 그것을 주기가 차마 아까워 그 직인의 모서리가 닳아 없어질 때까지 손에 쥐고 주지 못합니다. 이것은 이른바 부인(婦人)의 인(仁) 에 불과합니다.”

한신은 이렇게 ‘필부의 용기’에 지나지 않는다고 항우를 폄하(貶下)하면서 다음과 같이 진언했다. “이제 대왕께서는 참으로 항왕이 하는 것과는 달리 천하의 무용을 가진 사람을 믿고 쓰신다면 천하에 당할 사람이 누구이겠습니까? 천하의 성과 고을들을 공신의 봉지로 주시면 심복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유방은 한신의 이런 건의를 귀담아 듣고 실행하여 마침내 항우를 이기고 천하통일을 이루었다. 이 이야기는 사마천의 《사기(史記)》 〈회음후열전〉에 나온다. 조상 대대로 명문거족(名門巨族)이었던 항우가 무식하고 시정잡배 같은 건달이나 다름없는 유방에게 천하를 빼앗긴 것은 논공행상(論功行賞)을 잘못했기 때문이고, 반대로 유방은 어느 누구와도 소통(疏通)하면서 그 말을 귀담아 듣고 실행에 옮겼기 때문이다.

회의시간에도 자기와 의견이 맞지 않은 사람에게 화를 내며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사람을 ‘필부지용’에 불과 하다고 말한다. 무슨 일이든지 심사숙고해서 판단하고 소통이 원활하게 이루어진다면 필부지용을 면(免)하리라고 본다.

이경일 회사원(대한시멘트)  news@ygweek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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