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일 회사원

우리 인간은 슬프기 때문에 울고, 무섭고 두렵기 때문에 떤다. 당연하고 일반적인 상식인데 미국의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는 이 말에 이의를 제기한다. 거꾸로 “울기 때문에 슬프고 떨기 때문에 두렵고 무섭다.”고 말하는 것이 오히려 합리적이라는 주장이다. 쉽게 말해서 감정은 몸에서 기원하는 본능적이지 정신에서 기원하는 인지적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것이 제임스가 주장한 '감정 이론'의 핵심이다.

덴마크의 심리학자 칼 랑케(Karl Lange)도 이와 유사한 이론을 독립적으로 발표했다. 그래서 ‘제임스 랑케 이론’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제임스는 연장선상에서 “어떤 성격을 원한다면 이미 그런 성격을 가지고 있는 사람처럼 행동하라”고 말한다. 이 말을 달리 말한다면 감정이 행동을 만드는 것 보다는 오히려 행동이 감정을 만든다는 것을 강조한다.

시대를 앞서가는 선각자들은 고난에 시달리기 마련이다. 수없이 반론을 제기하고 그 이론이 맞다 는 것을 증명해 보라고 하는데 제임스 역시 예외를 벋어날 수 없었다. 현대 심리학자들은 감정이 행동을 만들고 행동도 감정을 만든다는 조금 애매한 것 같지만 감정과 행동 중 어느 것이 먼저라고 단정 짓기보다는 둘 다 쌍방통로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다른 통로를 처음 제시했던 제임스는 일부 심리학자들에게서 가혹한 비판을 감내해야 했다.

영국의 심리학자 리처드 와이즈먼(Richard Wiseman)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제임스는 자신의 가설을 옹호하려 했지만 당시 보수적인 심리학계의 시선으로 보면 그의 이론은 지나치게 급진적인 주장이다. 결국 제임스의 가설은 시대를 너무 앞서간 것이라는 꼬리표를 단채 창고에 처박히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그래서 60여년이 흘렀다”고 했다. 와이즈먼은 ‘가정 원칙’이 이렇게 빛을 보지 못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질적으로 많은 학자들이 인용한 정황이 여러 곳에서 보인다. 미국의 대표적 성공학 전도사들이 1930년대부터 많이 인용해 왔다. 행동이 감정을 만든다는 것이야 말로 성공학 전도사들에게 있어서 가장 많이 인용한 제 1계명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최고의 성공학 전도사로 손꼽히는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데일 카네기, 나폴레온 힐, 노먼 빈센트 등은 사실상 제임스를 이론적 사부로 모셨다. 특히 데일 카네기는 베스트셀러 《인간관계론》에서 제임스의 말을 이렇게 인용했다.

“행동은 감정에 따라 일어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행동과 감정은 함께 발생한다. 따라서 직접적으로 의지의 통제 하에 있는 행동을 조절하여 의지의 통제 하에 있지 않는 감정을 간접적으로 조절할 수 있다. 그러므로 유쾌하지 않을 때 저절로 유쾌해 지는 최고의 방법은 유쾌한 마음을 먹고 이미 유쾌하다는 듯이 행동하고 말하는 것이다.” 제임스의 주장과 상통하는 부분이다.

나폴레온 힐도 1937년에 출간한 《놓치고 싶지 않은 나의 꿈 나의 인생》에서 제임스의 발언을 인용한 후 다음과 같이 말한다. “바꿔 말해 우리는 단지 결심한 것만으로는 우리들의 감정을 즉석에서 바꿀 수는 없지만 행동은 바꿀 수 있으며 행동을 바꾸면 자동적으로 감정이 바뀐다. 행복하려면 행복한 듯이 행동해야 한다. 새로운 사고를 통해 새로운 행동에 이를 수 있듯이 새로운 행동을 통에 새로운 사고에 이를 수 있다. 열정적인 사람이 돼라. 열정적이 되면 열정적으로 행동하게 된다. 미소를 지어라 자신에게 그리고 세상을 향해 그러면 당신이 굳이 거기에 정신을 집중하지 않아도 저절로 나타날 내면의 기쁨과 열정을 체험할 것이다.”

이렇게 성공학 전도사라고 하는 사람들이 제임스의 이론을 ‘꿈꾼 대로 이루어진다.’는 식으로 극단적으로 까지 끌고 가는 바람에 비판의 대상이 된 적도 있었다. 이들이 비판의 대상이 됐지만 순전이 없는 것을 있다고 사기를 쳤다고 보는 사람은 없다. 제임스의 이론을 이어받아 체계화한 사회 심리학자 데릴 벰(Daryl Bem)은 일보 전진하여 행동이 감정과 더불어 믿음 까지도 바꾼다고 주장한다. 벰이 연구하면서 주목한 사건이 1954년 5월 17일 연방 대법원의 브라운 사건 판결이었다. 이 판결에서 대법원은 흑인에 대한 그동안의 ‘분리평등’ 원칙을 뒤집고 교육 시설의 분리에 위헌 판결을 내렸다. 이 판결은 10여 년 전인 1942년에 실시된 조사 자료에 의하면 학교통합 정책, 주거 통합정책, 대중교통 통합정책에 찬성한 백인들의 비율은 각각 30%, 35%, 44%수준에 머물렀다. 그러나 이 판결이 있고나서는 2년 뒤 1956년에는 그 비율이 49%, 51%, 60%로 크게 증가했음을 보여준다.

이 변화는 무엇을 의미 하는가. 이 물음에 흥미를 가진 벰은 물리학도였으나 전공을 사회심리학으로 바꿔 더 연구를 하게 된다. 전공을 바꾸기란 쉽지 않았지만 1964년 8년 동안 공부하던 물리학을 그만두고 미시간 대학에서 사회심리학으로 박사학위까지 받는다. 그는 1967년부터 70년대 초반에 걸쳐 발전시킨 ‘자기 지각 이론’을 내 놓았다. 자기지각 이론은 타인의 행동을 보고 그 사람을 규정짓는 것처럼 자신의 행동을 보고 자신을 규정하는 것을 말한다. 특별한 계획 없이 어떤 행동을 한다면 행위자는 행위를 바탕으로 내적 특성을 추리해 낸 것을 말한다. 이 자기지각 이론도 제임스의 가정 원칙에 뿌리를 두고 있다. 결론적으로 제임스 랑케는 우리에게 “즐거워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기 때문에 즐겁다.”라는 메시지를 준다.

이경일 회사원(대한시멘트)  news@ygweek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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