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일 회사원

왜 거대한 기업들도 실패하는가? 가끔 위대한 기업들도 실패하는 모습을 보고 미국 하버드대학의 경영대학원 클레이턴 크리스텐슨(Clayton M. Christensen) 교수는 질문을 던지면서 《혁신 기업의 딜레마》 라는 책을 통해 ‘파괴적 혁신’이라는 답을 내 놓았다. 선두기업 자리에 올라 비교적 안정된 기업으로 경영해온 관행이 바로 그들로 하여금 궁극적으로는 그들의 시장을 빼앗아갈 진보된 새로운 기술 즉 ‘파괴적 기술’을 개발하는 것을 어렵게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파괴적 기술은 처음에 등장할 때는 거의 주류 소비자들이 관심을 갖는 특징 면에서 낮은 성능을 제공하지만 일부 새로운 고객들이 중시하는 다른 특성도 지니고 있다. 일반적으로 그런 기술은 더 저렴하고 작고 단순하기 때문에 사용하기가 간단하고 편리함이 장점이기도 하다. 그래서 신규 시장을 창조한다. 아울러 파괴적 기술의 개발업체들은 풍부한 자금력과 축적된 기술력을 바탕으로 제품의 성능은 물론 단순한 조작을 통해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 궁극적으로는 기존 시장을 지배할 수 있다. 크리스텐슨 교수는 세 가지 혁신의 조화가 균형을 이뤄야 한다고 주장했다.

첫째는 기존 제품의 품질을 업그레이드 하는 ‘존속적 혁신’이고, 두 번째는 생산 단가를 줄이는 ‘효율적 혁신’이고, 세 번째가 ‘파괴적 혁신’이라고 했다. 파괴적 혁신의 대표적인 예는 일본에서 소니 사가 트렌지스터 라디오를 진공관으로 대체한 것을 볼 수 있었다. 이런 파괴적 혁신을 통해 성장은 물론 일자리까지 늘어났으니 일석이조의 효과를 얻은 셈이다.

그런데 당시 한국기업들은 존속적 혁신과 효율적 혁신에 목을 맸지만 파괴적 혁신에는 가까이 가지 못했다. 매년 줄어든 인력으로 생산성을 올리려고 했으나 번뜩이는 파괴적 혁신은 없었다. 파괴적 혁신은 단순하고 저렴한 제품 또는 서비스로 시장 밑바닥을 공략해 기존시장을 파괴하고 시장을 장악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스펙 좋은 경영진과 자금력이 풍부한 대기업들이 더 단순하고 저렴하며 열등한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에 계속해서 밀리는 사례가 비일비재했다. 이런 신생기업들이 이른바 파괴적 혁신 기업인데 이들은 기존의 기업들과는 여러 가지 면에서 판이하게 다른 사업 모델로 시장에 뛰어들어 소비자들에게 각광을 받는데 성공했다. 그들은 대부분 하위 시장에서 판매되는 제품을 채택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런 제품은 대기업이 취급해서는 수익을 내기가 쉽지 않으며 대기업 고객들의 수요도 없는 편이다.

이렇게 하위제품으로 고객들에게 가까워진 중소기업들이 시간이 흐름에 따라 성장하면서 대기업들을 기습하는 사례도 가끔 보인다. 일본에 도요타나 혼다 같은 자동차회사들이 대표적인 예로 1970년대 소형 승용차로 시장 공략에 나섰다. 파괴적 혁신 기업들은 고객들이 결코 구매할 수 없었던 신제품을 소개하기도 한다. 기존 기업들은 자신들의 기존 사업 모델과는 너무 방향이 맞지 않다는 이유로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상품들이다. 지금은 필수품이 되어있는 PC도 역사적으로 보면 대표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크리스텐슨은 “뭔가 점점 파괴적으로 변해가는 곳에 그대로 있다는 것은 마치 물이 빠진 썰물 때 해변에 우뚝 서서 두 팔을 벌리고 ‘파도야 오지마라’고 명령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물결은 그것은 전혀 신경 쓰지 않습니다. 그냥 거기 가만히 앉아 있으면 내 상품은 일상재화가 되고 맙니다.”라고 했다.

그는 다양한 시장에서 모두 좋은 성과를 올리는 대기업들이 획기적인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실패를 겪는 것을 가리켜 ‘혁신가의 딜레마’라고 하였다. 혁신적인 차별화된 기술을 시장에 내놓기 위해서는 과거와는 다르게 협력업체와 고객 업체들로 구성된 새로운 네트워크를 구성해야 하는데, 이러한 작업은 가볍고 민첩한 차세대 기업들이 유리하며, 또한 대기업들은 새로운 기술을 재빨리 낚아채서 상업화할 만큼 재빠르지 못한다고 했다.

파괴적 혁신 이론은 동양철학(東洋哲學)에서도 나온다. 《손자병법(孫子兵法)》 〈모공편〉에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가 나온다. 피아의 실정을 정확하게 판단하여 싸우면 백번을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적의 실정은 모르고 나만 알거나 적의 실정은 파악하였어도 나의 상태를 확실하게 모르면 승부는 반반이라고 했다. 거기에 적의 상황도 잘 모르는데 나의 상황까지도 모르면 싸울 때 마다 패한다고 하였다.

아직도 우리나라에서는 파괴적 혁신을 시도하는 사람이 매우 드물다. 말로는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호랑이를 잡는다고 하지만 호랑이 굴에 들어가기를 꺼려한다. 어떻게 보면 진보와 보수가 아닌 중도를 표방한 제3의 세력을 형성하여 당을 만든다고 해도 성공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제3의 정치 세력도 파괴적 혁신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다.

이경일 회사원(대한시멘트)  news@ygweek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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