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일 회사원

사람은 누구나 아름다운 이름으로 역사에 기억되기를 바란다. 인간에게도 유통(流通)기한과 유효(有效)기간이 있다. 유통기한은 이 땅에 숨 쉬며 살아있는 시간을 말하며, 유효기간은 무한대로 정해져 있지 않다. 역사적으로 훌륭한 일을 한 사람들은 우리가 좋은 이름으로 역사에서 배운다. 조선시대 세종대왕(世宗大王)이나 이순신(李舜臣) 장군처럼 우리 역사에서는 영원히 살아남을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죽음과 동시에 세상에서 사라지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훌륭한 분들은 먼 훗날까지 향기롭게 전해진다고 해서 유방백세(流芳百世:꽃다운 이름이 백세에 까지 길이길이 전함)라고 했다. 그러나 이름이 남는다고 해서 모두 좋은 것만은 아니다. 구한말 친일파같이 악행으로 남으면 악취도 오래가기 마련인데 이런 경우는 유취만년(遺臭萬年:더러운 이름을 영원히 남김)이라고 한다.

속담에 표범은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하는데 그 이름과 함께 행적이 오랫동안 남게 된다는 표사유피인사유명(豹死留皮人死留名)에서 온 말이다. 공을 이룬(功名) 사람의 이름이 대나무나 비단에(竹帛) 드리워져있어 역사에 좋은 이름으로 길이길이 남는다는 말이다.

종이가 발명되기 전에는 죽간(竹簡)이나 비단(緋緞)이 글을 써서 기록하는 도구였다. 그래서 죽백은 요즘의 서적이고 역사를 기록하는 책이었다. 나라에 큰 공을 세우거나 그 명예가 역사에 길이길이 전하게 된다는 말이 되어 큰일을 계획하는 사람이 자신의 포부를 말할 때 자주 쓰는 말이다. 중국의 역사서 이십 사사 가운데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에 이어 반고(班固)의 《한서(漢書)》에 이어 범엽이 쓴 《후한서(後漢書)》 등우전에 나오는 말이다.

등우(鄧禹)는 어린 시절 신동으로 불리며 어린나이에도 시에 능했으며 수도 장안(長安)에 유학하며 당대 훌륭한 스승을 만나 공부한 사람이다. 유학시절 유수(劉秀)를 만나 서로 교분이 두터웠는데, 유수가 몇 살 위였으므로 형 동생하며 친하게 지냈다. 유수가 등우를 만났을 때 그의 비범함을 알고 서로 위해주며 가깝게 지냈다.

그러다가 서로 고향으로 돌아가 헤어져 살고 있었는데 유수가 큰 뜻을 품고 혼란을 수습하고자 군사를 일으켰을 때였다. 이때 한나라는 왕망(王莽)이 신(新)나라라는 나라를 세워 폭정에 시달리고 있는 시기였다. 신나라를 기점으로 전한과 후한으로 나누어지는데 폭정을 보다 못한 한나라 왕실의 후예인 유현(劉玄)이 왕망을 몰아내고 황제로 추대되었다. 그가 바로 갱시제(更始帝)다. 어떤 사람이 등우를 갱시제에게 추천했으나 등우는 갱시제가 인품이 큰 인물이 되지 못한다고 거절했다. 얼마 후 등우는 유수가 황하 이북 땅을 평정하러 떠났다는 말을 듣고 찾아간다. 이때 유수의 세력은 보잘것없이 미미했다. 세력이 약한 유수의 사정을 알고도 등우는 옛정을 생각하며 도우려고 찾아가 만났다. 유수는 등우를 반기며 혹시 벼슬을 원하는지 물었다.

등우의 대답은 그대의 덕이 사해에 떨치기를 바란다며 ‘나의 작은 힘이나마 바쳐서 이름을 죽백(竹帛)에 드리우면 족할 뿐입니다.’고하며 유수를 보필하고자 한다고 했다. 등우가 벼슬을 원했다면 갱시제에게 추천 받았을 때 이미 갔을 것이다.

유수는 등우의 사람됨을 알기에 항상 근거리에서 많은 도움을 받고자 옆에 두고 있었다. 유수가 자신의 세력이 보잘 것 없음을 보고 한탄할 때면 등우는 “천하를 손에 넣는 데는 덕이 두터운지 아닌지가 중요하지 영토의 크고 작음은 문제가 아닙니다.”와 같은 긍정적인 조언으로 유수에게 힘을 실어 주었다.

그 후로 얼마 안가서 유수는 한나라를 평정하고 천자(天子)의 지위에 올랐고 이를 도왔던 등우의 공명도 죽백에 드리워져 널리 후세에 전해지게 되었다.

항상 선거철이 되면 저마다 나라를 위해 국민을 위해 좋은 일을 한다면서 국민의 뜻을 어긋나게 밀어붙일 때가 가끔 있다. 이럴 때 마다 한 결같이 하는 말이 후세에게 공과 과를 묻겠다고 갖다 붙인다. 그러나 반대를 무릎 쓰고 밀어붙인 것은 성공작이라고 평가받는 것은 극소수이고 대부분 후유증을 남기고 만다. 사람이 이름을 죽백에 남기는 것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물론 인간으로 태어나 유효기간이 무한한 좋은 이름을 남기면 가장 좋겠지만 씻을 수 없는 오명(汚名)을 남기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 큰일을 했는데도 범죄행위를 했다거나 사리사욕만 챙기는 사람들은 오히려 이름을 남기기 않는 것만 못하다. 사람의 진정한 평가는 그 사람이 이 세상을 살고 있을 때보다도 떠났을 때 편견 없는 한 평가가 이루어진다.

이경일 회사원(대한시멘트)  news@ygweek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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