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일_회사원

유치원 아이에게 해와 달 중 어떤 것이 좋으냐고 물어보니 달이 고맙다고 한다. 그 이유를 물어보니 해는 훤할 때 비추고 달은 캄캄할 때 비춰주니 당연히 달이 고맙다는 것이다. 참 어린이다운 발상이다. 그런데 여름해가 좋을까 겨울해가 좋을까를 물어보면 어떨까.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누구나 겨울해가 좋다고 할 것이다. 이 말을 2500년 전에 사람의 성품과 비교하여 나온 말이 있다. 

노(魯)나라 학자 좌구명(左丘明)이 춘추(春秋) 해석서 에서 사람의 성품을 비교하며 사용한 말에서 유래되어 지금 까지도 쓰인다. 겨울날의 해는 온화하고 자애로운 성품을 뜻했는데 여름의 햇빛은 무섭다고 표현했다. 춘추오패의 한 사람으로 19년을 망명 생활하다가 마침내 진(晉)나라 왕이 된 진문공(晉文公)때 이야기다. 

조쇠(早衰)는 19년 망명 생활하는 중이(重耳)를 따라다니며 보좌한 진나라의 공신이었다. 재능 있는 정치가이자 모사로 진문공 중이를 춘추오패(春秋五覇)가 되도록 만드는데 공을 아끼지 않은 사람이었다. 조쇠의 아들 조순(趙盾)도 문공사후 양공 때 재상으로 있으면서 대를 이어 국정을 잘 보좌하며 치적을 쌓았다. 양공이 죽자 일부 대신들이 일곱 살 난 어린 공자를 임금으로 세우려 할 때 조순은 너무 어리다고 반대를 했다. 

반대를 해도 세력이 어린 공자에게로 기울자 어쩔 수 없이 따랐다. 조순은 반대했지만 공자가 왕위에 오르니 그가 영공(靈公)이었다. 조순이 염려한데로 영공은 유치한데다 무능하고 나이가 들수록 방자해지기 까지 했다. 조순은 몇 번이나 충간(忠諫)을 했으나 듣지 않고 오히려 죽임을 당할 위협을 받았다. 당시 진나라에서는 조쇠 조순 부자를 진나라의 공신이라고 칭찬이 많았지만 성격은 180도 달랐다. 어떤 사람이 아버지와 아들 중 누가 더 어진 사람인가 하고 물었을 때 중신 호사고(狐射姑)가 답했다. ‘조쇠는 겨울날의 해와 같고, 조돈은 여름날의 해와 같다’고 했다. 호사고 역시 문공 망명시절 함께한 호언(狐偃)의 아들이라 대를 이은 공신이었다. 나중에는 가계(賈季)라는 이름으로 나온다. 

호사고의 대답은 조쇠는 옳고 바르지만 조돈은 나쁘고 틀렸다는 말은 아니다. 원래 표현은 동일지일(冬日之日) 하일지일(夏日之日)이었다. 그런데 삼국시대 오(吳)를 정벌한 사마씨의 정권 진(晉)나라의 두예(杜預)가 동일가애(冬日可愛) 하일가외(夏日可畏) 즉 겨울 해는 온화고 좋지만 여름 해는 무섭다고 표현했다. 그때부터 ‘동일가애 하일가외’가 고사성어로 널리 쓰이기 시작 했다. 같은 태양인데도 겨울 해는 온화하고 자애로워 친할 수 있지만 하일가외는 한여름의 태양처럼 무서운 사람이니 가까이 하기엔 어렵다고 표현한 것이다. 

연말이 되어가니 추위가 기승을 부린다. 높은 뜻을 지닌 지도자처럼, 나라를 다스리는 최고 통치자처럼, 태양이 군림하는 여름철엔 모두가 경원(敬遠)했다가 태양이 빛나는 한 희망 또한 빛난다. 하늘의 태양은 항상 그대로인데 인간에겐 여름에는 배척받고 겨울에 추울 때는 그리워하니 그 변덕은 태양이 아니라 인간이다. 이 시대에도 겨울에 비추는 조쇠 같은 지도자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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