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호재 아시아문화학회 부회장

선거정국의 문은 여론조사가 연다. 6.13 지방 선거에 나설 후보들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 결과가 연일 언론보도를 통해 공개되고 있다. 그때마다 후보들의 희비가 엇갈린다. 지지자들 또한 감정의 격랑을 겪는다. 물론 표도 움직인다. 유행에 따라 소비성향이 쏠리는 밴드왜건(band wagon) 효과가 후보 선호 현상에도 작동되기 때문이다.

한국인들의 특성상 밴드 왜건 효과는 더더구나 우리 선거판에선 강렬한 힘을 지닌다. 냉정과 열정 사이를 수시로 오가기 때문에 후보지지 선호 경향도 그만큼 변덕스럽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를 일으킨 국민들이 하루아침에 변해 보수 정권을 세워 낸 사례만 봐도 잘 알 수 있는 일이다.

여론조사의 도그마에 걸려 곤욕을 치른 후보들은 그래서 ‘여론조사가 신이다’ 는 자조의 말을 토로하기도 한다. 본격 선거전에 나서기도 전에 발표되는 여론조사에서 일단 밀리면 마치 신이 계시한 운명인 양 극복이 힘겨운 까닭이다.

여론조사 순위를 제외한 모든 게 종속 변수가 되고 마는 선거는 곰곰 따져보면 맹랑하기 짝이 없다. 대부분 ARS 자동 음성 방식으로 진행되는 여론조사에서 그 짧은 시간에 후보의 진면목을 파악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장황한 질문을 전화기로 듣고 기다리다 답할 응답자가 없기에 후보의 정견이나 정책을 묻는 설문항목은 존재할 수가 없다.

오직 후보자의 이름 석 자와 직함만이 선택의 키워드가 될 뿐이다. 어디서 한번은 들어본 듯한 이름, 그리고 그럴듯해 보이는 직함에 버튼이 눌러지게 마련이다. 사실이 이렇다보니 불공정 여론조사 논란이 비일비재하다. 대부분 후보 직함 명기에 관련된 문제일 때가 많다.

얼마 전 광주의 모 단체장 후보 여론조사에서도 여론조사를 둘러싸고 격한 다툼이 발생했다. 후보 직함 때문이다. 1위를 기록한 후보의 직함에 문재인 대통령과의 유대가 물씬 느껴지는 직함이 붙은 반면, 나머지 후보들의 경우 평범한 경력으로 소개됐기 때문이다. 사실은 이들 후보들도 대선 당시 중앙당의 핵심 보직들을 맡은 바 이력이 있었기에 불공정 논란이 불붙었다.

새 정부가 출범한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서 문 대통령과의 긴밀한 관계가 느껴지는 직함은 아무래도 눈길을 끌 수밖에 없을 것이다. 상대 후보들의 불만은 그런 관점에서 어쩌면 당연한 반응이다.

표피적 여론조사는 후보의 안일함을 부추기는 폐단을 낳기도 한다. 여론조사의 순위에 모든 게 가려져버리는 상황에서 정책선거를 치르려는 노력은 물거품이 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떤 후보가 자신이 대표하는 지역구의 미래를 위해 꼼꼼한 준비를 하겠는가. 오히려 그럴듯한 직함 하나 챙기는 게 더 낫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작금의 선거구조에서 신의 당선 계시와 같은 절대적 힘을 지닌 여론조사의 폐해를 극복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물론 뾰족한 대안은 없다. 정치가 늘 그래왔듯이, 이 문제 또한 유권자의 몫이다. 일단 출마 후보의 면면을 꼼꼼하게 살피는 노력이 필요하다. 후보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지닌 유권자가 다수를 이룬다면 왜곡된 결과가 나올 리 만무하다.

박호재 아시아문화학회 부회장 (언론인)  news@ygweekly.com

<저작권자 © 영광군민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