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일근 편집위원장

현행 지방자치는 1991년 시작됐다. 27년이 지났다. 그럼에도 조금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지방은 여전히 지방을 면치 못하고 있다. 대부분의 권력이 여전히 중앙에 있는 지방자치는 참다운 지방자치라 할 수 없다. 겨우 지방 공무원의 인사권과 재정 집행권 정도를 제외한 큰 권력은 여전히 중앙 정부가 쥐고 있다. 심지어 지방자치의 주역을 뽑는 권한조차 지방과는 거리가 멀다. 절름발이 지방자치다.

시행 초기부터 절름발이 지방자치에 대한 비판은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무늬만의 지방자치가 아닌 진정한 자치를 요구하는 목소리다. 그럼에도 중앙 권력이 지방을 좌지우지하는 제도는 고쳐질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중앙’이 ‘지방’을 쥐락펴락 할 수 있는 권한을 놓지 않겠다는 의지를 볼 수 있다.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지방자치를 하지 않겠다는 지극히 비민주적 발상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중앙 정부가 지방 정부에 권한을 이양하지 않으려 하는 것은 이해한다. 하지만 국회가 지방자치 시대에 걸 맞는 법을 제정하면 참다운 지방자치 시대를 열어갈 수 있다. 이는 정당이 현재 갖고 있는 자치단체장과 광역‧기초 의원에 대한 공천권을 내려놓겠다는 의지가 전제돼야 가능하다. 하지만 지방자치 주역들에 대한 공천권을 내려놓겠다는 정당은 없다. 공천권을 내려놓는 순간 지방에 대한 정당의 영향력은 현저히 줄어든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자치단체장을 비롯한 광역‧기초 의원이 되고자 하면 정당에 충성하지 않으면 안 되는 구조다. 자치단체장이나 지방 의원에 나서려면 정당 공천을 받아야 당선 가능성이 높다. 국가 대표 선수 격인 국회의원이 사실상 지방 권력까지 쥐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한 반발도 없지 않았으나 지방 권력을 내려놓자고 주장하는 국회의원의 목소리는 들어본 기억이 없다. 힘없는 ‘지방’은 꼼짝 없이 국회의원과 정당에 충성을 다하게 된다.

이것이 민주주의 대한민국 지방자치의 현실이다. 작은 권력이나마 나눠 갖는 것에 만족할 수도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진정한 민주주의 공화국이 돼야 한다. 무늬만의 민주주의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목숨까지 잃었는가. 정부 수립 이후 최근 까지 70여 년간 절름발이 민주주의의 비극이 계속됐다. 4‧19와 5‧18, 6월 항쟁에 이어 촛불혁명에 이르기까지 수없이 많은 피를 흘렸다. 모두 비민주적 제도를 민주적인 것으로 포장한 절름발이 민주주의의 부작용이다.

여덟 번째 지방선거가 다가오고 있다. 입지자들의 발걸음이 분주하다. 민심 얻으랴, 정당 공천 받으랴 이중고를 치르는 모습이 짠하다. 진정한 민주주의 나라가 됐더라면 민심 얻기에만 나서도 되는 것을. 민심보다 당심이 먼저인 나라가 과연 바람직한 나라인가 생각해봐야 한다. 지방자치의 주역이 되고자 하면 당연히 민심이 먼저라야 맞다. 당심이 먼저이고 민심이 그 다음인 민주주의는 분명 절름발이 민주주의다.

우리 국회들, 특히 민주당 소속 의원들 가운데는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한 인사들이 많다. 그런데도 완전한 민주주의,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지방자치의 완성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없다. 일단 권력을 잡으면 내려놓기 싫은 것이 권력의 속성이라지만 실망이다. 권력의 맛에 취해 초심을 잃은 것은 아닌가 묻는다. 그 많은 특권 가운데 지방을 쥐락펴락 하는 특권이 가장 ‘맛있는’ 특권이 아니길 빈다.

시장‧군수가, 지방 의원이 지역민을 위해 최선을 다할 수 있으려면 먼저 정당과 국회의원이 지방 권력을 내려놓아야 한다. 중앙 정부가 틀어쥐고 있는 권력이 지방으로 이양되려면 법과 제도가 바뀌어야 한다. 국회의원의 지방 권력 포기가 먼저 이뤄져야 하는 이유다. 대통령의 권력 분산 방안이나 헌법 전문을 바꾸는 것 못지않게 중앙 정부와 국회의원이 지방권력을 내려놓는 개헌도 중요하다.

조일근 편집위원장  news@ygweek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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