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일 회사원

책이 날개 돋친 듯 잘 팔리는, 요즘말로 베스트셀러를 말한다. 중국 동진 때 좌사(左思)는 제(齊)의 임치출신으로 못생긴 얼굴에 말까지 잘하지 못했다. 교우관계도 별로 없었고 번거롭고 복잡한 것을 싫어해 한가롭게 집안에 들어앉아 독서와 저작에만 몰두했다. 어려서부터 독서를 좋아해 사마천의≪사기(史記)≫를 일찍이 탐독했고 사장(詞章:문장과 시가)을 좋아했다. 한번 붓을 들면 큰 강물이 흐르듯 장엄하고 화려한 문장이 만들어 졌다.

이러한 작품들이 두세 번씩 갈고 닦임을 거치며 흠 잡을 곳이 없는 명문장으로 만들어져 갔다. 1년여 노력 끝에 제도부를 완성한 좌사는 이어서 삼도부의 저술을 계획하고 있었다. 삼도란 촉한의 성도(成都) 오의 건업(建業), 위의 업(鄴)을 말하는 것으로, 이 세 도시를 중심으로 촉‧오‧위 세 나라가 정립하여 연출한 부침(浮沈:물위에 떠올랐다 가라앉았다 함)의 역사를 노래로 옮겨놓은 서사시를 위도부, 오도부, 촉도부의 삼도부 라고 말한다.

마침 때를 같이하여 그의 누이 분(芬)이 궁으로 들어가게 되어 당시 수도인 낙양으로 함께 들어갔다. 좌사는 집안의 출입문 뜰 담장, 심지어는 화장실등 일상 접촉이 잦은 곳곳에 지필묵(紙筆墨)을 준비해 놓고 시상이 떠오르면 그때그때 써내려갔다. 이렇게 열심히 10년을 기록한 결과 웅장하고 화려한 삼도부를 완성했다. 좌사는 자신이 지은 삼도부가 당시 최고의 작가 반고(班固:한서의 저자)와 장형(張衡:이경부의 저자)의 경지를 뛰어 넘어섰다고 스스로 자부했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하면 빛을 보지 못할 것이라는 걱정도 했다. 좌사는 당시 문학으로 이름을 떨치고 있는 황보밀을 찾아 삼도부를 평해 달라고 부탁했다. 황보밀은 삼도부를 천천히 보고 이 시대에 최고의 작품이라고 감탄하며 삼도부의 서(序)를 써 주었다. 이어 저작량 으로 있는 장재가 위도부의 주(注)를, 유규가 오도부와 촉도부의 주(注)를 붙여 주었다.

≪박물지(博物志:진귀한 사물을 써놓은 백과사전)≫의 저자 장화가 삼도부를 보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으며, 육기가 역시 촉‧위‧오 삼국을 주제로 한 작품을 쓰려다가 좌사의 삼도부를 보고 아쉬운 점을 간직한 채 붓을 내던지고 말았다고 한다. 이로부터 삼도부는 빛을 보기 시작하여 낙양의 부호 자제들이 앞 다투어 전사(傳寫:서로 돌려가며 베끼어 씀)해 갔으며, 좌사의 집에 전사 요구가 쇄도했다.

이 시대에는 인쇄술이 발달하지 못해 읽고 싶은 책이 있으면 한자 한자 필사해서 보는 수밖에 없었고, 종이의 생산도 극히 적었으므로 종이가 날개 돋친 듯 팔릴 수밖에 없었다. 종이 값은 폭등했다. 이렇게 해서 좌사의 삼도부가 낙양의 종이 값을 비싸게 만들었다고 해서 ‘낙양지가귀’가 유래 되었다. 요즘으로 말하면 베스트셀러가 되어 품귀현상 까지 일어난 것이다.

이경일 회사원 (대한시멘트)  news@ygweek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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