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스님 얼굴이 꼭 돼지같이 보이는군요…스님 얼굴이 왜 돼지같이 보일까요?” “상감마마의 용안은 오늘따라 더욱 부처님 같아 보입니다.” “과인이 농담을 했습니다만, 어찌 대사께서는 농담으로 여기질 않습니까?” “저도 역시 농담을 했습니다. 돼지 눈으로 보면 모든 게 돼지로 보이고 부처의 눈으로 보면 모두가 부처로 보이지요.”

부처님 오신 날 아침 불현 듯 떠오른 태조 이성계와 무학대사가 나누었다는 유명한 대화입니다. 왕과 스님이 나눈 이 대화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입니다. 두 사람의 대화는 참으로 매력적입니다. 어떤 종교적, 학문적 가르침이 이보다 더 많은 것을 깨닫게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까지 합니다. 스님에게 “돼지 같다”고 한 태조의 유머 감각이 놀랍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런 왕에게 “부처님 같다”고 응수한 무학대사의 유머 감각은 더욱 놀랍습니다. 조선 건국의 ‘동업자’ 관계라 할 수 있는 두 사람의 상대에 대한 믿음이 읽혀집니다. 새로운 나라를 만드느라 노심초사 하는 가운데도 이 같은 수준 높은 농담을 주고받을 수 있는 높은 ‘내공’에 감탄을 금할 수 없습니다. 두 사람에게 돈이나 권력에 대한 욕심이 있었다면 과연 이 같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을까요? 오직 새로운 나라,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고서는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600여 년 세월이 흐른 오늘 대한민국은 ‘나라다운 나라’ 만들기 2년째입니다. 태조와 무학대사가 ‘새로운 나라’ 조선 건국에 노심초사했을 그 세월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많은 불안 요인이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많습니다. 권력, 즉 정치에서 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분야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 가야 한다는 요구가 큰 만큼 부담도 크다는 점에서도 다르지 않습니다.
복잡하고 불안한 남북 관계의 재정립이라는 어려움 까지 짊어진 문재인 대통령의 처지는 태조 이성계의 당시 상황보다 가볍지 않습니다. 내놓고 어깃장을 놓는 정적들이 적지 않은 점을 고려한다면 많이 힘들 것입니다. 국가기념일인 5‧18 기념식에도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공휴일인 오늘부처님 오신 날에도 북핵 문제로 미국에서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하지 안 될 처지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문 대통령에게 무학대사의 역할을 해줄 사람이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위장평화 공세에 속고 있다”는 재미도 없고, 도움은 더욱 되지 않는 말을 하는 사람들만 보입니다. 문 대통령이 “돼지 같다”고 농담할 사람을 보고 싶습니다. 대통령에게 “부처님 같다”며 너스레를 떨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새로운 나라’로 가는 여정이 짧아지지 않을까요?

조일근 편집위원장  news@ygweek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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