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일 회사원

세상일에 너무 똑똑한 체 하거나 지나치게 따지려 들면 좋아하는 사람이 드물다는 이야기다. 다른 말로 대범하고 너그러워야 추종하는 사람이 주위에 많고 잘 따른다는 것이다. 중국 후한시대 사학자 반표(班彪)의 아들 반초(班超)의 이야기다. 그에 앞서 《공자가어(孔子家語)》에 물이 지나치게 맑으면 물고기가 없고 사람이 지나치게 살피면 따르는 무리가 없다.(水至淸則無魚 人至察則無徒)고 나온다. 반초가 인용하여 자구(字句)를 약간 달리해서 쓴 말이다.

반초는 대대로 역사를 저술하는 사학자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이상이 높고, 기골이 장대하며 무사(武士)의 기질이 농후하고 사소한 일에는 구애받지 않으며, 또한 당시대의 달변가였다. 후한 명제 5년(서기62) 형인 반고(班固)가 교서랑의 벼슬을 부여받자 형을 따라 어머니와 함께 수도 낙양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반초는 낙양에서 빈한한 집안의 생계를 돕기 위해 사서하는 관청의 고용원(요즘의 비정규직)으로 일했다.

날마다 종이와 붓만 가지고 하루하루를 보내다보니 답답하고 앞날도 보장되지 않아 불만이 쌓여가던 어느 날, 붓을 내던지며 탄식했다. “대장부로서 지략은 부족하나 이역에 나가 공을 세우고 제후로 봉해져야지 방구석에 갇혀 글씨만 쓰고 있을 수 있겠는가!” 옆에 있던 사람들이 그 말을 듣고 가소롭다는 듯 깔깔거리고 웃자, “당신들이 어찌 장사의 기백을 알겠는가.” 하며 큰소리는 쳤으나 불안한 마음에 유명한 관상쟁이를 찾아갔다.

반초의 관상을 본 관상가는 “자네는 제비의 입과 호랑이의 목을 가지고 있어 날아서 고기를 잡아먹을 형상이니 먼 곳에 제후가 될 길상이네”라고 하였다. 그 말은 반초의 일생을 한마디로 종합하는 말이었다. 그 후 명제16년 봉군도위 두고(竇固)가 흉노를 정벌할 때 반초는 비로소 가사마(假司馬)에 임명되어 군사를 거느리고 이오라는 곳을 공격하여 큰 공을 세웠다. 두고는 반초의 공을 인정하여 서역의 선무(宣撫) 책임자로 현지에 파견했다.

이역만리 서역에서 30여년 활동하면서 마침내 정원후로 봉해졌다. 나이 70에 이르러 직책을 사임하고 낙양으로 돌아와 사생교위로 있다가 세상을 떠났다. 반초가 서역 정원후로 있다가 물러날 때 교위로 있던 임상(任尙)이 후임자로 임명 되었다. 임상은 반초에게 조언을 청했다. “그대는 고위직을 두루 거친 사람이니 내가 조언할 처지는 못 되오 만, 굳이 하라고 하면 한마디 하겠소. 변방에 배치된 하급관리나 병사들은 잘 배우지 못해 대부분 교양이 없거나 성격이 난폭하고 죄과가 있는 사람들이 많소. 그리고 서역사람들은 음흉하고 교활하여 다루기가 매우 힘든 족속들이오. 내가보니 그대의 성격은 엄하기는 하나, 조급하여 너그러움이 적은 것 같소. 물이 지나치게 맑으면 큰 고기가 살지 않는 법이오. 정무를 지나치도록 엄하게 처리하면 아랫사람의 협조를 얻기 어려울 것이오. 작은 잘못은 관대하게 처리하고 업무는 대범하게 관리해야 할 것이오.”

임상은 이 말을 듣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귀담아 두지 않았다. 그러나 반초는 자기가 지켜본 이민족에 관한 노하우를 평범하지만 실제로는 가장 적합한 서역 융족을 다스리는 데는 아주 명언이었다. 반초의 이 말을 무시한 임상은 부임한지 3년여 만에 반초가 30년 동안 견고하게 구축해 놓은 한나라의 기반을 무너뜨려 마침내 본국으로 소환 당하고 말았다.

흔히 물이 너무 맑으면 물고기가 살지 못한다고 말한다. 원리원칙을 너무 따지면 살기가 힘들다는 말이지만 사람을 너무 살핀다면 함께 일하기가 또한 어렵다는 말이다. 자기의 분수에 맞게 살면서 엄격과 관용을 병행해서 다스린다면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편할 것이다.

이경일 회사원 (대한시멘트)  news@ygweek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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