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일 회사원

정약용의 가장 큰 후견인은 정조였다. 반대파 즉, 노론 벽파들도 정약용의 실력은 인정하면서도 이념이 달라 정약용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노론 벽파로서는 좋은 기회였던 것이다. 1801년 신유박해 때 주위의 인물들 역시 참화를 당하고 바로 위 형 정약종(丁若鍾)도 참수를 당했다. 1801년 11월 강진으로 유배 가는 길은 슬프고도 험했다. 중형 정약전과 함께 나주까지 같이 왔다가 나주 율정점 에서 헤어져 정약전은 흑산도로 정약용은 강진으로 갔다.

이것이 중형 정약전과 마지막 대면이었다. 서로 편지는 왕래했으나 얼굴은 보지 못하고 정약전은 흑산도에서 귀양이 풀리지 않은 상태로 죽고 말았다. 정약용은 오후 늦게 강진에 도착 했으나 천주교인이라는 죄도 아닌 죄목으로 유배를 왔으니 반겨주는 사람은커녕 모두 외면하고 모른 척 했다. 저녁이 돼서야 동문 밖 어느 주막집에 들어갔다.

주모에게 배가 너무 고프니 저녁 요기할 것을 부탁하자, 멀쩡하게 생긴 선비가 무슨 죄를 지었기에 이런 누추한 곳 까지 유배를 오게 되었느냐고 물으며 주모가 한 가지 조건을 내세운다. 조건은 정약용으로서는 들어줄만한 조건이었다. 내가 잠자리와 밥은 책임을 질 테니 당신은 공짜로 우리 동네 어린 아이들 글을 가르쳐 주라는 요구였다. 정약용은 흔쾌히 수락하고 저녁을 먹고 쉴 수 있었다. 정약용으로서는 이 주모가 평생 잊을 수 없는 은인이었다.

사의재(四宜齋) 라는 주막에 딸린 작은 방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저술 활동에 전념하였다. 이런 상황이 보통사람들 같으면 자포자기에 가까운 상황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정약용은 위기를 기회로 삼았다. 자기가 이대로 세상 속에 그냥 묻히게 되면 폐족으로 남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한 가지 긍정적인 것은 정약용의 외가가 해남윤씨 집안이었다. 어머니가 고산 윤선도(尹善道)의 증손인 공재 윤두서(尹斗緖)의 손녀였던 것이다.

윤두서의 종가에 만권당(萬卷堂)이라는 장서각이 있었는데 여기서 많은 책을 열람할 수 있었다. 강진 촌에서 정약용으로서는 아주 좋은 기회였다. 처음에는 조선의 정치제도를 새롭게 수립하고자 방례초본을 만들었다. 그러나 자신의 현재 위치와 한계를 감안하여 근본적인 제도개혁은 포기하고 현재의 제도를 개정하고 논하는 경세유표(經世遺表)를 썼다. 목민심서(牧民心書)는 지방관이 부패하지 않도록 권고한 책이고, 흠흠신서(欽欽新書)는 공정한 재판을 위한 지침서이다.

실학뿐만 아니라 다방면에 박식하고 모든 것을 아우르는 천재적인 인물임에 틀림없는 사람이다. 18년 동안 강진에서 유배생활을 마치고 유배가 풀려 고향 경기도 광주로 돌아간다. 해배 후에도 저술에 전념하며 여생을 보내다가 1836년 2월 세상을 떠나는데 그날이 공교롭게도 결혼 60주년인 회혼례 날이었다. 일설에 의하면 부엌에서 회혼례 음식을 준비하는데 방에서 곡소리가 났다고 한다. 그러니까 회혼례 상을 받지 못하고 세상을 하직한 것이다.

18년 귀양살이에 풀려나 18년을 더 살다 세상을 하직한 것이다. 1762년 정조의 부친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고 1개월 후에 태어나 1836년 2월에 세상을 떠났으니 우리나이로 75세가 되었다. 당시 수명으로 보면 대단히 장수하신 편이다. 정약용과 정조는 조선시대 최고의 찰떡궁합이었다. 어린 아이와 비슷한 장난을 자주 했었다.

하루는 정조가 약용을 불러서 내기를 걸었다. 정조와는 열 살 차이다. 둘이서 지필묵을 놓고 내기를 하는데 같은 글자 세 개로 이루어진 글자를 누가 많이 쓰는 가를 시합했다. 먼저 정조가 나는 강희 옥편을 달달 외운 사람인데 나를 이길 수는 없을 것이라며 장담을 했다. 약용역시 저도 질수는 없습니다. 하며 한자씩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삼(森)추(麤)충(蟲)품(品)등등 20여자를 썼다고 한다. 그러다 이제 모두 바닥이 났다. 정조는 이제는 없다고 했다. 그런데 정약용은 석 삼(三)자를 쓰면서 제가 이겼습니다. 그러자 정조도 무릎을 치면서 왜 내가 삼자를 생각하지 못했을까. 하며 남자답게 인정했다고 한다.

정약용은 술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고 차를 아주 즐겼으며 차(茶)의 달인이었다고 한다. 한방에도 조예가 깊었으며 서제 정약횡은 당시 최고의 의술을 가진 의사였다. 5만 원 권 지폐의 인물 후보로도 올랐던 정약용은 조선시대 주(主) 학문이었던 주자학(朱子學)에만 메이지 않고 새로운 다산(茶山)학 이란 학문을 새롭게 만든 사람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백성들을 위해서 온 열정을 쏟으신 분이다.

이경일 회사원 (대한시멘트)  news@ygweek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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