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일 회사원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이 말은 본래 히포크라테스(Hippokrates)가 배워도 끝이 없다는 의술을 말하려고 했었는데 지금은 예술로 굳어졌다. 이와 비슷한말이 동양에서는 '인생조로'다. 인생의 덧없음을 시적(詩的)으로 표현한 말이다. 중국 한나라 무제(武帝)시절 소무(蘇武)장군이 이국땅 흉노에 포로로 잡혀있을 때 이릉(李陵)이 회유하기 위해 쓴 말이다.

소무는 무제의 명을 받들어 흉노(匈奴)에 사신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그들의 내분에 휘말려 흉노의 우두머리 선우(單于)의 포로가 되었다. 선우는 별 수작을 부리며 소무를 회유하려고 애를 썼다. 소무는 어떤 회유에도 굴하지 않고 절개를 지키고 있었다. 그러자 선우는 ‘숫양이 새끼를 낳으면 본국으로 귀국 시키겠다’고 약속을 하였다. 즉 보내지 않겠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북해(바이칼 호)로 멀리 유배를 보내며 의식주도 내리지 않아 들쥐와 풀뿌리로 겨우 목숨만 연명하고 있었다.

그렇게 곤궁하게 살고 있는데 마침 소무와 절친했던 이릉이 5천의 기병으로 흉노와 싸우다가 8만의 흉노 대군에게 포위되어 결국은 항복하는 일이 발생했다. 이른바 ‘이릉의 화’로 일컫는 사건이다. 이 일로 인하여 사마천(司馬遷)은 이릉을 변론하다가 무제의 노여움을 사 궁형(宮刑)을 당하는 수모를 겪는 일도 발생하였다. 그때 선우는 이릉과 소무가 서로 잘 알고 친분도 두텁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루는 선우가 이릉에게 소무를 찾아가 다시 한 번 설득해보라고 했다. 이릉 역시 투항이 부끄럽기도 했지만 선우의 명을 어기지 않고 소무를 찾아가 말한다. “인생은 아침 이슬과 같다고 하지 않았던가. 덧없는 인생 어찌하여 자네는 스스로를 그렇게 괴롭게 하는가.” 이릉입장에서는 우선 살고 보자는 말이긴 하지만 참으로 하기 힘든 말이었다. 그러나 이릉은 소무의 현재 모습이 너무 초라하고 너무 힘들어 보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소무는 친구의 진심어린 회유조차 꿈쩍도 하지 않자 충절에 감동하며 스스로가 부끄러워 했다. 이때 소무는 눈을 먹고 가죽을 씹으면서 지조를 지켰다. 그 모습을 본 이릉은 그냥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서 인생은 아침 이슬과 같다는 ‘인생조로’가 나왔다. 인간은 누구나 한번은 죽기 마련이다. 목숨을 걸고 끝까지 절개를 지킨 소무는 결국 다음 임금 소제 때 양국의 화친으로 풀려나 노후에는 영광을 누리며 80세까지 장수하였다.

그 뒤 약1000년이 흘렀을 때 송나라 충신 문천상(文天祥)은 그 일생을 성심으로 청사를 빛낼 일이라 했다. 인간은 100년도 못살면서 1000년의 걱정을 한다고 한다. 지금도 나라를 이끈다는 위정자들을 보면 당과 자신만의 이익을 위한 다툼이 더욱 심하다. 대한제국 말기 친일을 했던 사람들은 ‘인생조로’를 몰랐을까, 알면서도 친일을 했을까. 그들이 지금 살아있다면 한번 묻고 싶다.

이경일 회사원 (대한시멘트)  news@ygweek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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