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일 회사원

징비록은 서책으로는 드물게 국보로 지정되어있는 우리나라 고전이다. 얼마나 중요하기에 국보 제132호로 국가에서 지정했을까? 그 이유는 서애 유성룡 선생이 후세에 경각심을 주기 위해 전에 있었던 잘못된 관행이나 비리 등을 경계하며 삼가라고 후세인들에게 징계하는 의미가 담긴 책이기 때문이다. 면면을 살펴보면 임진왜란 이전의 국내외 정세와 임진왜란의 실상, 그리고 왜란 이후의 상황까지 체계적이며 종합적으로 알아보기 쉽게 구성되어 누구나 읽어도 이해가 어렵지 않다.

이 책을 읽기시작하면 스스로 전장을 가서 보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질 정도로 생동감이 있다. 서애 선생은 재미있는 작품을 남기고자 이 책을 집필했다고 보지 않는다. 그가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는 제목에 함축되어 잘 나타나 있다. 징비란 시경 소비편에 나오는 문장 “予其懲而毖後患(내가 징계해서 후환을 경계하고자 한다)로부터 유래한다. 즉 스스로 겪은 일을 교훈삼아 후일에 다시 닥칠지도 모르는 우환에 대비하라는 메시지가 담겨있다.

이런 집필 목적을 이루고자 자신의 잘못은 물론 조정내의 분란, 더불어 임금에 대한 백성들의 불신과 원망 등 임진왜란 전후의 모든 잘잘못을 따지지 않고 가감 없이 기록하여 그 가치를 더할 수 있다. 특히 전투당시의 상황 조선과 일본 그리고 명나라와의 외교관계, 거기에 주요 장군들에 대한 묘사 등이 잘 나타나 있다. 그리고 전쟁 후 각국에 미친 영향과 임진왜란 후 백성들의 어려운 생활상등이 현실적으로 잘 기록되어있는 책이다.

사실 서애 선생도 남인의 일원으로 당파로 본다면 한쪽에 치우쳐 있었다. 그러나 책 내용은 비교적 객관적으로 집필 하려고 노력한 부분이 보인다. 적국에 대해서도 일관되게 왜적이라고 쓰는 것을 고집하지 않고 일본이라는 국호를 사용, 무분별한 표현을 자제 하였고 전쟁전의 배경에 대해서는 상세하게 설명하여 ‘미리 살펴 전쟁을 막지 못한 것에 대해 돌이켜 반성 한다’는 메시지를 함께 담고 있다. 또한 명나라의 원조를 중시하면서도 이순신과 조선관민 의병의 공로를 특히 강조하여 임진왜란은 조선중심 전쟁이었음을 다시 한 번 확립하였다.

징비록이 저술되기 전까지는 중국과 일본 모두 임진왜란을 자국 중심으로 보았고 자국 중심으로 해석하려고 했다. 전장도 조선이었고 피해가 가장 큰 나라도 조선이었고 엄연히 전쟁의 한 축을 담당했는데도 명나라의 임진왜란 기록인 ‘양조 평양록’에는 조선은 정사가 해이해지고 간신 유성룡과 이덕형이 국왕에게 아부하니 등등의 기록이 버젓이 남아있었다.

뿐만 아니라 일본의 침략 목적에 명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도 굳이 드러내지 않았으며 어디까지나 조선이 그 자체적인 문제 때문에 일본의 침략을 막지 못했으며, 명은 다만 도의적인 차원에서 조선을 도왔을 뿐이라는 식으로 서술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런 왜곡된 사실이 일본에 여과 없이 그대로 전해진다. 일본 입장에서는 명이 조선의 상국이므로 이러한 일련의 일들을 액면 그대로 의심하지 않고 무능한 조선으로만 보고 있었다.

이러한 일본과 중국의 시각을 한칼에 균형을 갖고 바라보도록 해준 책이 바로 《징비록》 이다. 징비록은 일본에 전해진 후 청나라 학자 양수경 에게도 전해져 현대 중국의 임진왜란 연구에까지 영향을 주고 있다. 이러한 서애 선생의 충정과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이 녹아있어 우리나라 고전의 반열에 오른 것이다. 징비록이 처음 출간된 것은 임진왜란이 끝난 36년 후 1633년으로 그의 아들 유진이 서애집을 간행하면서 그 안에 수록하였다.

이후 1647년 그의 외손자인 조수익이 경상도 관찰사로 재임하던 중 16권으로 구성된 징비록을 간행하였다. 그러나 징비록은 상하2권과 《녹후잡기》로 이루어진 판본도 전해지고 있는데 어떤 판본이 먼저 간행되었는지는 잘 모른다. 서애선생은 6년간의 참혹한 전쟁을 겪고 나서도 반성하지 않고 교훈을 얻지 못한다면 그야말로 책임 있는 선비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나라의 질서는 무너지고 수많은 문화유산은 불에 타거나, 약탈당하고 백성들의 삶은 도탄에 빠진 현실은 누구의 책임이겠는가? 이에 자신이 몸담았던 조정과 스스로의 잘못을 참회하고 반성하며, 임진왜란 전후의 냉정한 현실인식을 통해 후손들에게 값진 교훈을 주기위하여 징비록을 전한다고 썼다.

이경일 회사원 (대한시멘트)  news@ygweek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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