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일 회사원

지붕위로 유인한 다음 사다리를 치워 상대를 곤경에 빠지게 하여 주도권을 잡는 병법 36계 가운데 28번째 계책이다. 적에게 작은 미끼로 깊숙이 유인하여 지원군의 도움을 받지 못하도록 차단함으로 사지에 몰아넣는 계책중의 하나다. 《손자병법》 <구지편>에서 “장수가 병사들을 이끌고 싸울 때에는 마치 높은 곳에 올라가게 한 뒤에 사다리를 치우는 것과 같이 해야 한다.”

이 고사의 이야기를 확실하게 전거해주는 이야기가 《정사 삼국지》 제갈량 전에 나온다. 후한말기 형주에는 유표(劉表)가 성주로 있었다. 유표에게는 적자인 유기(劉寄)와 후처의 아들 유종(劉琮)이 있었다. 그러나 유표는 후처를 사랑했으므로 장남 유기보다도 유종을 더 아끼고 사랑했다. 제갈량(諸葛亮)이 유표에게 왔을 때 유기는 제갈량의 지혜를 얻어 자신의 안전함을 도모하려고 기회를 노렸으나 좀처럼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어느 날 유기는 한 가지 계책을 꾸며 제갈량에게 접근하여 후원을 함께 구경하다가 저 누각에 고서가 있다고 유인하여 함께 오른다. 오르기 전에 하인을 시켜 내가 함께 오르거든 사다리를 치우라고 미리 일러뒀다. 누각에 오른 뒤 유기는 정색을 하고 제갈량에게 말했다. “지금 위로는 하늘에 닿지 않고 아래로는 땅에 닿지 않습니다. 말은 당신 입에서 나와 내 귀로만 들어올 뿐입니다. 내가 살아날 방도를 가르쳐 주십시오. 말씀 하실 수 있습니까?”

천하의 모사꾼 제갈량도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할 수없이 제갈량은 전후 사정을 들어보고 계책을 들려준다. 춘추시대 말기 진나라 헌공의 첩 여희는 전처의 아들 태자인 신생(申生)과 동생 중이(重耳)를 모함하여 해코지 하려고 했다. 이때 중이는 이를 간파하고 국외로 망명을 했다. 신생은 마음이 관대하고 너그럽기도 하고 또한 효자로 부왕 헌공을 잘 모셨다. 어느 날 신생이 부왕 헌공에게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고자 했는데 극악무도한 여희는 절호의 기회라 여기고 독이든 음식으로 바꿔치기해 올렸다.

상황을 모른 헌공은 음식을 먹으려고 젓가락을 집자 여희는 만류하며 말했다. “이 음식은 궁 밖에서 만들어온 음식입니다. 우선 다른 이에게 먹여 보십시오.” 그리고는 옆에 있는 시종에게 음식을 먹게 했다. 한입을 먹은 시종은 곧바로 쓰러져 온몸에 독기가 퍼져 금방 죽고 말았다. 이 상황을 직접 목도한 헌공은 “천하에 불효자 같으니라고, 감히 내가 이렇게 살아있는데 아비의 자리를 탐내다니! 내 그놈의 죄를 죽음으로 묻겠다.”라며 크게 분노했고, 이 소식을 접한 신생은 살아남기가 힘들 것으로 생각하고 자결해 버렸다.

이 이야기를 들려준 뒤 “신생은 너그럽고 인자했으나 궁 안에 있었으므로 죽음을 면치 못했고, 중이는 언제 모함을 당할지 몰라 미리 도망을 해서 살 수 있었습니다.” 영리한 유기는 이 이야기를 가슴깊이 간직하고 유표에게 강하태수로 보내줄 것을 청했다. 강하태수로 내려가 황태후의 화를 당하지 않고 살아날 수 있었다. 사다리는 결코 사다리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는 미끼의 일종이다. 고서가 있다고 하는 바람에 제갈량도 속았던 것이다.

큰 손해는 보지 않았지만 유기는 얻고자 하는 것을 얻었고 제갈량은 속아서 고서는 얻지도 못하고 지혜만 가르쳐준 셈이 되었다.

이경일 회사원 (대한시멘트)  news@ygweek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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