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수 한국사마천학회 이사장

지난 몇 달 사이 우리 사회는 두 가지 크고 심각한 문제에 직면했다. (가장 큰 문제의 근원은 정치이지만 이 문제는 별도의 논의가 필요하므로 이 지면에서는 생략한다.) 이 문제들은 동시에 국민들을 몹시 참담하게 만들었다. 자기 본분과 자정 능력을 상실한 언론이 그 하나요, 국민이 부여한 권력을 국민을 상대로 무자비한 폭력으로 행사하는 검찰이 그 둘이다. 도대체 왜 이런 현상이 터져 나왔을까? 그리고 그 현상의 근원은 무엇일까?

이른바 ‘보수’로 불리는 우리 사회의 수구 기득권 세력은 일제 강점기부터 독재 권력에 이르는 동안 친일, 매국, 정경유착, 세습, 학연, 지연, 혈연 등으로 권력과 부를 독점해왔다. 그들은 권력과 부의 독점을 위해 숱한 불법과 비리를 자행했고, 심지어 무고한 국민들을 갖은 방법으로 탄압하고 죽였다. 이런 점에서 우리 현대사는 이들 수구 기득권들의 발악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민주화를 갈망하는 국민들은 그 때마다 정의로 무장한 채 저항했고, 그 결과 촛불혁명이라는 신성한 혁명을 일구어냈다. 촛불혁명은 정치 세력은 물론 언론과 검찰 등 이른바 권력과 부를 독점해온 수구 기득권 세력의 청산을 강력하게 요구했다. 그리고 지금 이 국민의 명령에 대한 이들의 저항이 본격화된 것이다.

한국의 보수는 보수가 아니라 수구 기득권 패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이들은 보수의 가장 기본적이고 귀중한 가치인 ‘귀한만큼 책임과 의무를 다하라’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에는 손톱만큼도 관심이 없다. 권력과 부를 독점하고 나아가 이것을 세습하기 위해 오로지 사리사욕과 탐욕으로 무장한 채 온갖 불법과 비리는 밥 먹듯이 저지른다. 부와 권력을 독점하면서도 그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는 완전히 내팽개치는 세력, 이들이 우리의 이른바 ‘보수’라는 수구 기득권 세력들이다.

역사가 사마천은 2천 년 전에 이미 권력과 부를 가진 지배층(지도층)의 책임과 의무를 강조한 바 있다. 그는 공직자가 갖추어야 할 기본자세와 정신으로서 ‘멸사봉공(滅私奉公)’을 강조했다. 전국시대 조나라의 외교관 인상여의 입을 빌려 사마천은 “나라의 급한 일이 먼저이고 사사로운 원한은 나중이다.”라고 했다. 또 공직자들의 기록인 <순리열전>의 다음 대목은 마치 지금 우리 사회, 개혁과 청산의 대상이 된 검찰과 법관들을 겨냥해 일침을 가하는 것 같다.

“법령이란 백성을 착하게 이끌기 위함이고, 형벌이란 간교한 자를 처단하기 위함이다. 법문과 집행이 잘 갖추어져 있지 않으면, 선량한 백성들은 두려워한다. 그러나 자신의 몸을 잘 수련한 사람이 관직에 오르면 결코 문란한 적이 없었다. 직분을 다하고 이치를 따르는 것 또한 정치를 바르게 하기 위함이다. 어찌 위엄만으로 되겠는가?”

‘보수’로 자처하는 수구 기득권 세력과 적폐를 청산해야 할 주체에서 청산의 대상이 되어 버린 언론과 검찰 그리고 법관들은 사마천의 위의 말을 깊이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 나아가 보수의 진정한 가치인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모든 언행의 맨 앞에 내 걸어야 할 것이다. 그것만이 국민의 준엄한 심판에서 간신히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일러스트=경향신문 김상민 기자>

김영수 한국사마천학회 이사장  news@ygweek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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