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이규 영광백수중학교 교장

우리 학교 교정 뒤편에는 넓은 텃밭이 있는데 그 중 일부를 학생들과 함께 텃밭 가꾸기를 하고 있다. 텃밭에는 상추, 고추, 오이, 가지, 옥수수, 고구마를 조금씩 골고루 심는데 농약을 하지 않는 친환경 작물이기에 벌레 밥이 되는 손실도 감수해야만 한다. 주렁주렁 매달렸던 옥수수가 어느 날 아침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 땐 얼마나 허전했던지. 아마 뒷산에서 내려온 고라니, 멧돼지의 소행이 아닌가 싶다. “워메이 어쩌꼬, 어떤 놈이 이렇게 다 파잭혀부럿단가이.” 하시던 동네 할머니의 볼멘소리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얼마 전, 아프리카 돼지 열병 때문에 살아있는 돼지를 파묻는 뉴스를 TV에서 연일 내보냈었는데 그 바이러스 병원균을 옮기는 야생 멧돼지만은 아니기를 바란다.

상추며 풋고추, 오이를 따서 학교 구내식당에서 점심에 먹는 재미는 제법 쏠쏠하다. 싱싱한 상추 위에 돼지고기 한 점을 살짝 올려 풋고추, 된장과 함께 먹는 그 맛은 꿀맛에 견주어도 전혀 손색이 없을 듯. 농약을 치지 않고 가꾼 채소이기에 건강에도 좋을 테고. 거기다가 급식실 조리사님들의 요리 솜씨와 친절함까지 더했으니.

엊그제는 학생들과 함께 고구마를 캤다. 나는 어렸을 적에 고구마 재배로 유명한 시골에서 자랐는데 지금은 고인이 되신 초등학교 담임선생님이 생각났다. “이놈들아 고구마 좀 웬만히 먹어라. 고구마를 많이 먹으니 머리가 그 모양이지.” 수업시간에 이해를 못하는 학생에게 자주 하시던 말씀이셨다. 고구마가 머리하고 아무 상관도 없으련만 당시 시골에서는 형편이 어려워 밥 대신 고구마를 많이 삶아 먹었기 때문이다. 말씀은 좀 투박하게 하시지만 그래도 정은 많으신 분이셨다.

고구마는 너무 잘거나 너무 커도 인기가 떨어진다. 중간 정도 크기가 삶아 먹기가 좋고 맛도 있다. 아니 이건 극과 극이지 않은가? 작은 것은 엄청 작고 큰 것은 건장한 성인의 팔뚝만큼 하니. 나중에야 안 사실인데 우리의 실수는 고구마 둑이 너무 크고 순을 너무 베게 심은데 있었다. 요놈들이 영양분을 풍부하게 섭취하여 “여기는 내 세상이요”라고 생각하고 넓은 둑 속으로만 마음껏 뻗어나간 모양이다.

“선생님! 이 고구마 가지고 경로당엔 언제가요?” “응, 예은이는 언제가면 좋겠어?” “빨리 가서 할머니, 할아버지께 드리고 싶어요.” 고구마를 심을 때 했던 약속을 이 녀석이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었다. 매년 이맘때면 학생들과 함께 마을 경로당을 방문해 왔다. 이번 경로당 방문은 손수 심은 고구마를 가지고 어르신들께 드릴 수 있어 특별한 의미가 있으며 학생들 모두 행복해 하는 표정들이다.

행복이란 저 멀리에 있는 것이 아니다. 꼭 큰 것을 가져야만 하는 것도 결코 아니다. 사소한 일상에서도 자신이 생각한 바를 꿈꾸고 이뤄내면 그것 또한 행복한 일이 아니겠는가!

최이규 영광백수중학교 교장  news@ygweek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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