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일 회사원

요즘 미국에서는 ‘남편을 빌려 드립니다.’라는 콘셉트로 서비스업이 유행처럼 이루어 졌다. 실제로 남편을 빌려주는 것이 아니라, 남자손이 필요한 부분을 대신해주는 서비스업을 말한다. 미국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서울 강남권에 소위 잘나가는 독신녀(골드미스)들에게도 많이 필요한 서비스다. 서비스업하면 그래도 금융업이 최고다. 돈이 필요한 사람에게 돈을 빌려주고 다소 높은 이자를 받은데, 돈이 많은 사람들에게 관리해주는 차원에서 약간의 이자를 주고 보관하면서 금리의 차이를 차지하는 금융업이 은행(銀行)이다.

유럽의 명문으로 꼽히는 메디치가의 사례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15세기 프랑스의 남부에 위치한 리옹은 유럽은 물론 동양의 진귀한 물건까지 서로 교환되는 국제시장으로 면모를 갖추게 된다. 거래되는 상품은 농축산물을 비롯하여 비단 향신료, 보석 등 필수품이나 사치품 할 것 없이 다양하게 거래되었다. 당시는 소규모 상인에 불과했는데 기축통화(현재 미국의 달러와 같은 세계적으로 기준이 되는 화폐)가 없으므로 각 나라 화폐의 가치를 계산하기가 매우 곤란했다.

그때 장터 옆에 벤치에 앉아있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물건을 사거나 파는 상인이 아니라 화폐가치가 서로 다른 각 나라들의 화폐가치를 환산하여 대신 계산 해주는 사람이었다. 이탈리아의 피오리노, 프랑스의 프랑, 스웨덴의 달러 사이의 가치가 계산되어야 한다. 벤치를 지키는 사람들이 소위 토박이로 가장 가치판단을 잘해 공정하게 계산을 해주었다. 그 대가로 약간의 수수료를 챙긴다.

이렇게 출발한 것이 유명한 메디치가의 금융 그룹이다. 지금 은행을 지칭하는 단어가 ‘bank’다. 이 말의 어원은 이탈리아어인 ‘banca’, 즉 벤치를 의미하는 말에서 유래되었다. 최초로 벤치를 지키며 흥정을 했던 사람이 비에리 인데 그는 이 업으로 큰돈을 벌어 재벌이 된다. 비에리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더 큰 그림을 생각했다. 그가 본 것은 교황청의 헌금(獻金)이었다. 당시 유럽 전역에서 거둬들인 헌금은 일단 자국의 화폐로 로마에 보낸 다음 여기서 각 나라별로, 또는 지역별로 필요한 운영비를 그 나라 화폐로 다시 분배하는 방식으로 운영되었다.

메디치가는 교황청에 제안한다. 전 세계의 각 나라에서 거두어들인 헌금을 로마 화폐로 환산하여 보관하고 있을 터이니 필요할 때마다 명령만하면 필요한 나라의 돈으로 바꾸어 주겠다는 그럴듯한 제안이었다. 그렇게 되면 편리하면서도 현금을 운송하는 비용도 절약할 수 있으며 도난 방지에도 훨씬 유리했다. 이렇게 해서 교황청의 금고지기로 지정되었다. 당시 메디치가에서 교황청 돈을 무려 10만 피오리노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약4조원에 달하는 막대한 금액이다.

교황청의 복잡한 관리를 제대로 파악하고 가려운 데를 긁어주는 계산이 서로 맞아 떨어졌던 것이다. 메디치가의 큰 그림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자신의 금고에 보관중인 어마어마한 돈을 다른데 활용할 방법을 찾았다. 그것이 무역을 하는데 필연적으로 필요한 국제 무역선이었다. 무역업자들은 많은 돈을 들여 배를 구입하고 다시 많은 돈을 들여 외국으로 나아가 외국의 물건을 구입해야 했다.

그때 배에 싣고 온 물건이 팔리기 전까지는 현금을 만지지 못하는 상태가 된다. 당시는 항해속도가 느렸으므로 배가 들어오기까지는 몇 개월이 소요되었다. 메디치가에서는 들여온 물건을 할인된 가격으로 미리 구입했다. 이른바 입도선매 식 상술인데 현금이 아쉬운 무역업자들에게 미리 선금을 주는 방식이다. 금융의 흐름을 파악한 메디치가는 다시 풍부한 자본을 바탕으로 명반(明礬)광산에 투자한다.

보통사람들은 생각도 못한 투자처였다. 동양에서 들여오는 물건들이 돈벌이가 그래도 괜찮은 편이라 많은 사람들이 투자했다. 그래서 비단이 많이 소비가 되었는데 그 비단을 깨끗하게 관리하려면 명반이 필요했다. 메디치가는 항상 한 차원 높은 투자처를 찾아냈던 것이다. 동양의 비단 수입이 많아질수록 명반의 판매도 많아 막대한 돈을 벌게 된다. 당시에도 큰 그림을 그리며 멀리 볼 수 있는, 즉 미래를 통찰할 수 있는 사람들이 큰돈을 벌수 있었다. 지금도 멀리보고 통찰할 수 있는 사람들이 큰 부자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이경일 회사원 (대한시멘트)  news@ygweek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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