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일 회사원

매우 위험하거나 위급한 처지에 놓인 상태를 비유적으로 하는 말이다. 사마천의 《사기》 <범수 채택열전>에 나오는 이야기다. 본래 위나라사람인데도 사람됨을 알아보지 못한 군주를 버리고 진(秦)나라로 들어가 소왕을 설득해 원교근공(遠交近攻)정책으로 천하를 통일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주고 물러날 때를 알아 천수를 다한 범수가 한 말이다.

춘추시대 진나라 영공이 많은 돈을 들여 9층 높이의 누대를 세우면서 신하들에게 말했다. “이 누대에 대해 감히 말하는 자는 참형에 처한다” 고 엄포를 놓았다. 모든 신하들은 꿀 먹은 벙어리가 돼 무서워하며 보고만 있었다. 이때 순식이 목숨을 걸고 군주 영공을 뵙기를 청했다. 영공은 활에 화살을 먹여 들고 순식을 맞이했다. 순식이 입을 열었다. “신은 감히 간하지 않을 것입니다. 신은 12개의 바둑알을 쌓고 그 위에 9개의 계란을 쌓아 올릴 수 있습니다.”

영공이 생각했을 때 도저히 해낼 수 없는 일이었다. 영공이 승낙했다. 순식은 얼굴빛을 바르게 하고 온 정신을 집중하여 약속대로 12개의 바둑알을 쌓고 그 위에 계란을 올렸다. 오히려 주위에서 보는 사람들이 더 긴장하여 숨도 크게 쉬지 못하고 보고만 있었다. 영공 역시 긴장한 눈으로 보면서 혼자 중얼댔다. “위험하다 위험해.” 이때 순식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이것은 장난에 불과합니다. 이보다 훨씬 위험한 것이 있습니다.”

영공이 궁금하다는 듯 “이 보다 더 위험한 것이 무엇이 있는지 나에게 보여줄 수 있소?” 순식은 기회를 잡았다는 듯 “9층 높이의 누대를 짓는다는 것은 3년이 걸려도 완성하기가 힘듭니다. 남자들은 농사일도 하지 못하고 여자들은 길쌈을 하지 못해 국고가 파탄(破綻)지경에 이를 것이며, 이웃나라들이 군사를 일으켜 언제든지 들어와 사직이 멸망된다면 왕께서는 무엇을 바라볼 것입니까?”

이 말을 들은 영공은 “과인의 잘못이 이 지경에까지 만들었구려” 하면서 즉시 공사를 중단하고 이미 했던 것 까지도 모두 헐어버렸다. 이 이야기를 어렵고 힘든 처지에 있는 범수를 소왕에게 소개하면서 왕계가 전했다. 소왕은 범수를 불러들이기는 했으나 중용하지는 않고 1년 동안 이나 변변한 음식으로 대접하면서 기다리게 했다.

일 년여 후에 소왕은 범수를 불렀는데 대화를 직접 나눠보니 학식이 출중하고 현재 돌아가는 상황을 손바닥 보듯이 훤히 알고 있는 지사였다. 범수의 계책은 빈틈이 없었고 자신이 보지 못했던 것을 바로 볼 수 있었다. 먼저 외척인 양후와 화양군을 몰아내고 왕실을 굳건히 세우며 원교근공정책을 받아들여 가까운 곳부터 잠식하는 천하통일의 기틀을 잡아간다. 그 후 진나라는 진시황(秦始皇)에 이르러 결국은 중국 전체를 통일하는 역사상 최고의 나라가 된다.

역사학자들은 진시황 시대에 천하통일을 이루지 못했다면 중국도 유럽처럼 여러 나라로 갈라져 언어나 풍습이 달랐을 것이라고 말한다. 물론 역사에 가설은 있을 수 없지만 도량형이나 화폐, 문자 등 진나라가 통일을 하면서 함께 통일이 되었기 때문이다. 진나라의 천하통일은 이때부터 시작하여 진시황에 이르러 완성을 보았던 것이다.

이경일 회사원 (대한시멘트)  news@ygweek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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