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일 회사원

남성들은 휴게소 소변기 앞에 섰을 때 예전에는 ‘남자가 흘리지 말아야 할 것은 눈물만이 아닙니다.’ 라는 문구를 흔히 볼 수 있었다. 진지하게 훈계하는 말보다는 재치 있는 표현으로 남자의 자존심을 살짝 건드리는 말이지만 거의 효과는 미미했다. 요즘은 소변기 안에 파리모형의 그림이 그려져 있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화장실 관리인이 어떻게 조금씩 흘리는 잔변을 감소시킬 수 있을까, 고민을 하고 많은 생각을 한 후에 소변기 아랫부분에 파리 한 마리를 그려 넣었더니 밖에 떨어지는 잔변이 약80%정도 줄어든 효과를 보았다. 대부분이 파리를 겨냥하여 정조준 사격하며 소변을 보았기 때문이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공항에서 시작돼 전 세계로 확산되어 사용되고 있다. 미국 텍사스 주의 고속도로변 쓰레기 문제도 비슷한 ‘역사’가 있다. 주변 환경이 지저분해 많은 자금을 투자해서 광고와 캠페인을 벌였으나 그다지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 쓰레기를 아무데나 버리면 저급한 시민이라고 자극도해보고, 쓰레기를 아무데나 버리지 않는 것은 선진시민의 의무라고 회유하는 캠페인도 효과가 거의 없었다.

사람들은 옳은 일이라 할지라도 훈계성 계몽을 하면 몹시 싫어하는 경향이 있다. 고심 끝에 주 당국이 발상을 전환했다. 당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는 풋볼팀 델레스 카우보이스의 선수들이 쓰레기를 줍고 맨손으로 맥주 캔을 찌그리며 “텍사스를 더럽히지 마” 라고 으르렁대는 텔레비전 광고를 제작했다. 처음에는 별 반응이 없었지만 1년이 지나자 쓰레기는 약 30%가 감소하였고, 6년 후에는 72%나 감소하였다. 텍사스 주민이면 거의 이 광고를 알고 있을 정도였다. 그 후 2006년도에는 이 표어가 미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표어로 압도적인 지지를 얻어 뉴욕의 메디슨 거리를 행진하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이 이야기는 미국의 행동경제학자 리처드 세일러와 법률가 캐스 선스타인이 공동 집필한《넛지: 똑똑한 선택을 이끄는 힘》에 나오는 이야기다. ‘넛지란 팔꿈치로 슬쩍 찌르다’ ‘주의를 환기 시키다’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은 이 단어를 ‘타인의 선택을 유도하는 부드러운 개입’ 이라는 정의를 내리며 격상시키기에 이른다. 넛지는 세계적으로 한때 붐을 일으키기도 했다.

2008년 당시 미국에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나, 영국에 데이비드 캐러먼 총리도 넛지에 관심을 보였고 우리나라 이명박 대통령도 주변 인물들에게 넛지를 권했다고 한다. 넛지를 비판하는 세력도 있다. 비판 세력들은 주로 인간의 ‘자유 의지’에 관한 것을 주로 문제 삼았다. 넛지의 주창자들도 인간의 자유 의지에 대해서는 그런 위험성을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선스타인은 “정부가 자신의 힘을 공고화하기 위해, 또는 특정업체에 친화적인 정책을 펴는 부정적인 넛지가 있을 수 있다”면서 “기본적인 이런 넛지의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투명성과 민주화는 필수”라고 강조한다.

넛지에 관한 논쟁은 지금도 벌어지고 있지만, 사실 전혀 새로운 것은 아니다. ‘현대 PR의 아버지’ 로 불리는 에드웨드 버네이스가 역설한 ‘간접적 수단의 매력’이라는 개념에서 태어났다.

버네이스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선전할 때에 직접 선전 보다는 이벤트 창출을 통해 행동양식을 판매하는 방법을 많이 사용했다. 넛지는 대부분 공익을 추구하는 반면 베네이스의 ‘간접수단의 매력’은 대기업을 위해 봉사한다는 다른 면도 있지만 대중을 설득하려는 의미의 본질은 같다. 넛지는 행동경제학보다는 커뮤니케이션학이나 홍보학에 더 가깝다.

오늘날 ‘계몽의 종언’이란 말이 자주 등장한다. 그것이 진실일까 는 의문에 쌓여있다. 현대인들에게는 어떤 메시지를 직접 언급하면 “감히 나를 가르치려해” 하며 반발하지만 교묘하게 이벤트나 인기인이나 유명인 들을 내세워 주입시키면 열광적으로 받아들이는 게 현실이다. 즉, 문제는 계몽의 포장술이다. 포장을 잘하면 먹힌다는 것은 누구나 잘 안다. 화려한 포장에는 자금이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버네이스의 이벤트 연출 묘기는 모두 대기업의 금전적 물량공세 덕분에 가능했던 것이다. 많은 학자들은 사람들이 넛지임을 알더라도 여전히 그 효과는 유효한 것으로 본다. 넛지는 자유로운 개입을 통해 효과가 부정적인 의미보다는 긍정적으로 보는 입장이 지배적이다.

이경일 회사원 (대한시멘트)  news@ygweek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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