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임 영광여성의전화 활동가

제3차 세계대전이라 불리 울 만큼 강력한 코로나19 전염병으로 전 세계가 몸살을 앓고 있던 어느 날 나라를 또 한번 발칵 뒤집어 놓을 사건이 일어났다.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디지털 성범죄 ‘텔레그램 내 성 착취 사건’ 이름하여 n번방사건이다.

n번방이란 미성년자와 사회초년생을 포함한 수십여 명에게 성적 괴롭힘을 동반한 성 착취 영상물과 반인륜적 포르노 영상을 찍도록 협박하여 그 영상을 텔레그램 채팅방에서 판매한 성범죄 사건이다. 참여한 성착쥐 주동 및 가담자가 26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그리고 이들 중에는 10~20대 남자 청소년이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n번방과 같은 범죄가 근절되지 못하고 반복해서 일어나는 이유는 강력히 규제 할 법안이 마련되어 있지 않아서다. 명백한 성범죄 임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음란물유포라는 인식과 제대로 된 성교육의 부재라고 볼 수 있다. 혹자는 “초·중·고교 학생들은 연 15시간씩 의무적으로 성교육을 받고 있다. 무엇이 문제인가?”라고 의문을 가질 수도 있다. 연 15시간의 성교육을 받도록 의무화 되었다고 하지만 실상 교과시수에 허덕이는 우리나라 교육현장에서 제대로 된 15시간이라는 성교육이 이루어 질 수 있을까?

다른 과목에 끼워 넣기 식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n번방 사건을 겪으며 서울시는 이미 교육청과 연계하여 초·중·고생 2만 명을 대상으로 디지털 성폭력 예방교육을 시행하겠다고 발표했다. 기존의 형식적 내용과 시스템 안에서 불나면 끄기 급급한 성폭력 예방교육의 ‘보여주기’ 식, 시수 늘리기 교육이 과연 얼마만큼의 효과가 있을까? 라는 의문이 들지만 교육을 확대 하겠다는 것에 대해서는 환영 한다. 하지만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보여주기 식 교육이 아니라 그 안에 있는 시스템과 내용의 획기적인 변화다.

2015년 교육부가 전국의 학교에 배포한 ‘성교육 표준안’은 “남성의 성에 대한 욕망은 때와 장소에 관계없이 나타난다(초등)” “데이트 성폭력은 여자가 데이트 비용을 내지 않아서 생긴다(고등)” 등의 설명을 나열하고 있다. 이 외에도 성차별, 성별고정관념, 성별이중규범, 정상가족 이데올로기, 성소수자차별 등을 담고 있다. ‘n번방’ 가해에 가담한 10~20대 남자 청소년을 끔찍한 악마나 특별한 예외상태로 보는 시선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들은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난 괴물이 결코 아니다. 우리 사회의 성차별과 남성 중심문화,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강간문화와 성 착취 구조가 그들을 키워낸 것이다.

그들이 그렇게 성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갖도록 역할을 했을 '성교육 표준안'을 전면 폐기하고, 피해자가 되지 않기 위한 교육에서 벗어나 성인지 감수성을 높이고 성별혐오에 대한 인식 개선뿐만 아니라 인권·평등·행복·소통·다양성 등과 같은 시민교육이 함께 이루어 질 수 있는 포괄적 성교육을 할 수 있도록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이번 사건은 온·오프라인을 넘나드는 잔혹함과 입에 담을 수조차 없는 끔찍한 상황들을 보여주고 있다. 이로 비추어 보았을 때 주동자·가담자·동조자가 되지 않기 위한 교육, 다시 말해 가해자가 되지 않기 위한 교육, 성폭력에 대한 올바른 관념이 설 수 있는 교육이 이루어 져야 할 것이다.

이제 가정 안으로 들어와서 생각해보자. 실제로 n번방 사건 이후 성교육에 대한 관심은 가정에서도 커지고 있다. 자녀가 성폭력 피해자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성교육 전문기관에 문의가 늘고 2~3명씩 그룹으로 성교육 과외를 한다는 내용의 뉴스를 접한 적이 있다. 통상적으로 다수의 학부모들은 성교육은 초등학교에 입학 하면서부터 시작한다고 이야기 한다. 하지만 성교육은 그보다 훨씬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이루어져야 한다.

예를 들어 목욕을 시킬 때 아이의 몸을 만져도 되는지 허락을 받는 등 자기의 몸을 누구도 함부로 만질 수 없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한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고 아이와 적극적인 대화를 통해 아이의 자주성을 인정하고 또, 자신이 존중 받는 존재임을 느끼게 해줘야 한다. 그리고 자녀 성교육의 주체는 학교가 아니라 부모라는 것을 잊지 않는 가운데 아이들에게 올바른 성교육을 시키기 위해서 부모가 먼저 성에 대한 올바른 가치관을 가질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하다. 그래야 비로소 우리가 자녀를 교육할 자격이 생기는 것이고 우리의 올바른 가치관이 자녀에게 올바른 성 가치관을 정립하게 하는 밑거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 당면한 이 과제는 비단 누구의 몫이 아니다. 가정이, 학교가, 지역사회가, 나라가 모두 힘을 합쳐 우리 아이들에게 그리고 우리 자신에게 존재의 소중함과 인간에 대한 존엄, 존중을 체득하게 해야 할 것이다.

박정임 영광여성의전화 활동가  news@ygweekly.com

<저작권자 © 영광군민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