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일 회사원

중국 전국시대로 접어들면서 공자(孔子)의 맥을 잇는 사람이 아성(亞聖 : 공자 다음가는 성인)으로 불리는 맹자(孟子)다. 제자 만장이 맹자에게 물었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저 사람이 훌륭하다’고 칭찬한다면 그는 어디를 가더라도 훌륭한 사람으로 칭찬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공자님께서는 그를 가리켜 ‘덕을 해치는 도둑’이라고 하셨습니다. 왜 그랬을 까요?

맹자가 대답 했다. “그를 비난하려고 해도 특별히 꼬집어 비난할 것이 없고 공격하려고 해도 공격 할 만 한 특별한 구실이 없으나, 그들은 더러운 세속에 아첨(阿諂)하고 시류에 합류하였느니라. 그리고 집에 있을 때는 충성심과 신의가 가득한척 하고 밖에서 행동할 때는 누구보다도 청렴결백한 것처럼 한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겉만 보고서 좋아하고 자신도 자기 처신이 옳다고 착각하지만, 그와 더불어 어찌 ‘요순(堯舜)의 도’에 들어갈 수 있겠느냐. 그래서 공자님께서는 덕을 해치는 도둑이라고 혹평하신 것이다.”

그래도 만장은 확실한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의문을 품자 맹자께서 다시 더불어 말씀 하신다. “공자께서 이렇게 말씀 하셨다. ‘나는 사이비(似而非)한 것을 미워한다. 말 잘하는 것을 미워함은 정의를 어지럽힐까봐 걱정스러워서, 말이 많은 것을 미워함은 신의를 잃을까봐 걱정스러워서, 정(鄭)나라 음악을 미워함은 아악(雅樂)을 어지럽힐까봐 걱정스러워서다. 아울러 향원(鄕愿)을 미워함은 그가 덕을 어지럽힐까봐 걱정스럽기 때문이다. 이제 그 뜻을 알겠느냐?”

공자나 맹자나 모두 향원을 비판하였다. “공자는 말하기를 ‘내 집 앞을 지나가며 내 집에 들어오지 않더라도 유감으로 여기지 않을 자는 오직 향원뿐이다. 그래서 향원을 도덕의 적(賊)이라고 규정했던 것이다. 그들의 말은 얼마나 번드르르한가. 말은 행동을 돌아보지 않고 행동은 말을 돌아보지도 않으면서도 입만 열면 옛 성인을 운운한다. 그 행동 또한 얼마나 그럴듯한가.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지금 이 세상위에 좋은 것이 좋은 것 아닌가! 라는 태도로 은밀히 세상에 영합하는 자가 바로 향원이다.”

율곡 이이(李珥)는 《성학집요》에서 향원을 “탐관오리나 아첨꾼은 소인의 전형으로서 누구나 어려움 없이 분별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사이비한 인물은 그 실체를 알아보기 힘들다. 낯빛은 근엄하고 입은 옳은 소리만 하는지라 자태와 언행이 군자와 닮아있고 매사에 삼가고 후덕한 것처럼 보여 딱 잡아 나무랄 데가 없는지라 온전하고 허물이 없는 군자의 행실과 비슷하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성현들은 그러한 인물을 더욱 깊이 경계했던 것인바 음험하게 세상에 아부 하면서도 항상 자기가 옳다고 주장하면서 속된 무리와 한 패가 되어 무사안일과 저열한 적당주의에 안주한다. 결국은 이상적 개혁을 실현하려는 선비의 앞길을 방해하고 나아가 참된 학문의 진로를 두절시켜 이단(異端)의 혹세무민(惑世誣民)보다 국가사회에 심대한 해악을 끼치고 있는 인물이 향원이라고 했다.

즉 향원은 결코 단순한 소인이 아니다. 여기서 ‘사이비’라 함은 군자와 비슷하지만 군자가 아닌 ‘사이비군자’를 의미한다. 군자는 모든 사람이 존중하는 긍정적 인간을 지칭하지만 향원은 그런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기피와 비난의 부정적 인간상을 대변한다. 대체로 향원은 유학공부는 했으나 도의 실현에는 관심 없고 학문을 수단삼아 현세의 명예와 이익의 추구에 급급한 소인배를 말하는 것이다.

이경일 회사원 (대한시멘트)  news@ygweek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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