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일 회사원

노벨상은 세계적으로 가장 공신력이 있으며 각 부문 부문 최고의 전문가에게 주어진다. 수상자로 결정되는 순간 몸값은 물론이고 언론의 관심이 집중된다. 1976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은 수상 후 2개월을 지내면서 “나는 평범한 감기에 대한 치료에서부터 존 에프 케네디의 서명이 담긴 편지의 시장가치에 이르기 까지 실로 다양한 문제에 대한 의견을 내놓을 것을 요청 받았다. 이것은 특정인에 대한 타인의 관심은 장본인을 우쭐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그 사람을 타락시키기도 한다”라고 했다. 행복한 불평이다.

그는 노벨상 후광으로 30여 년간 영예를 누리며 94세까지 장수했다. 노벨상 수상자 대부분이 이렇게 장수한다는 것은 이미 통계로 입증된 사실이다. 노벨상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상을 수상한 사람들은 대부분 오래 산다는 연구결과가 여러 곳에서 나온다.

영국의 보건학자 겸 의사인 마이클 마멋(Michael Marmot)은 영국 정부의 고위 관료와 하급관료가 건강상태가 서로 다르다는 것에 주목해 그 원인을 밝히려고 연구를 시작했다. 2004년 《사회적 지위가 건강과 수명을 결정 한다》라는 책에서 사회적으로 지위가 높은 사람일수록 더 건강 하고 장수한다는 이른바 ‘지위 신드롬을’을 제시했다.

마멋은 연구과정에서 실제로 미국 워싱턴 D. C.의 지하철을 타보면 누구나 쉽게 지위 신드롬을 이해 할 수 있다고 했다. 워싱턴 도시 동남쪽으로부터 메릴랜드의 몽고메리 카운티 까지 지하철을 타보면 1.6km 움직일 때마다 사람들의 평균 수명이 약 1년 반씩 증가하며, 워싱턴 도심 끝에 사는 가난한 흑인들과 다른 쪽 끝에 사는 부유한 백인들의 수명차이는 20년이라는 비교적 큰 차이가 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마멋은 그 이유를 “계급이 낮을수록 삶에 대한 지배력과 전면적인 사회참여 기회를 가질 확률이 낮아진다. 자율권과 사회 참여는 건강에 매우 중요하게 작용하기 때문에 참여가 부족하면 건강악화를 부르는 요인이 된다.”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적극적으로 사회 참여를 권하면서 “사회 참여는 즐거운 일이며 인간의 기본적 욕구이므로 이런 요구가 좌절되면 건강이 나빠진다. 낮은 계급의 사람들에게 직간접 적으로 그런 욕구를 좌절 시켜 왔다는 사실은 지위 신드롬이 문명화 사회의 오점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자신과 주변 사람들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모두의 지배력과 참여의 기회를 갖도록 사회 조직을 움직여 나가도록 고려해야 한다. 어느 사회나 불평등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 불평등을 건강에 끼치는 영향력은 인간이 통제할 수 있다. 왜 상황이 더 좋아지면 안 되는가? 그것은 우리 모두를 위한 일이다.”라고 했다.

지위 신드롬은 정치인들에게서도 나타난다. 특히 선출직 공무원들에게서 많이 보인다. 높은 지위를 유지하다가 권력을 내려놓게 되면 건강이 악화된다는 통계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국회의원에 당선되면 270여 가지의 특혜가 주어진다고 한다. 국회의원을 지낸 한 전직 의원은 “금배지를 달고 있으면 왠지 모를 광채가 나는 것 같고 배지 쪽에 계속 힘이 들어가더라. 그러나 낙선하고 나니 한없이 초라해지고 얼마동안은 배지가 꿈속에서도 보이더라”고 했다. 현직 시절에는 휴대전화가 쉴 새 없이 울렸는데, 낙선하고 나니 전화가 뚝 끊기는 것이 최고의 서러움으로 남았다는 전직 국회의원 이야기다.

우리나라 최고의 입법기관인 국회의원은 최고 고위 공직자다. 그러므로 생활 만족도도 보통 사람들에 비해 매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일반 국민 평균이 54.9%인 반면 국회의원의 생활 만족도는 89%에 이른다고 한다. 권력이 더 센 여당은 94.5% 야당은 82.4%로 나타났다. 이렇게 생활 만족도가 높으니 건강 또한 얼마나 좋겠는가. 건강뿐만 아니라 사랑을 나누기도 훨씬 쉬어진다고 했다. 권력을 가지고 있는 남성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미국 국무장관을 지낸 헨리 키신저가 “권력은 최고의 최음제(崔淫劑:성욕을 유발하는 약물)다”라고 말 한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권력을 추구하는 자들은 선거 때가 되면 사회를 위해 봉사하겠다고 한다. 어떤 사람은 국민의 ‘머슴’이 되겠다고 한다. 그래서 선거는 ‘거짓말 잔치판’이라고도 한다. 물론 의정활동을 하면서 정말 국민을 위해 열심히 하는 정치인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국리민복(國利民福)보다도 사리사욕(私利私慾)을 위해 더욱 정신을 쏟는 위정자들이 많음은 정말로 이 시대에 사라져야할 병폐다.

이경일 회사원 (대한시멘트)  news@ygweek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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